메타리즘 이시한 칼럼

메타버스는 빌런일까, 사이드킥일까?

쏟아지는 햇살, 상쾌한 바람, 게다가 인스타그램을 뚫고 나온 듯한 화려한 비주얼의 현지 음식까지, 여행은 보통 이런 모든 경험들의 총체다. 특히 창발적 만남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교재의 경험은 그 어떤 순간보다 값지다. 메타버스에서 과연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메타버스는 도무지 여행을 대체하는 대체제로서의 경쟁력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든가, 역사 유적을 탐방하는 정보성 여행은 충분히 메타버스에서 매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메타버스는 여행의 대체제가 될 듯도 하다. 과연 메타버스는 여행과 대척점에 서 있는 빌런일까, 아니면 여행이라는 히어로를 보조해주는 사이드킥일까?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여행 메타버스는 현실 여행의 대체제일까 보완재일까 하는 문제인 셈이다. 

디지털 트윈에서의 여행 시뮬레이션

‘여행 메타버스’ 하면 생각나는 첫 번째 모델은 여행지의 모습을 디지털 트윈으로 그대로 만들어서 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는 해당 관광지의 3D홈페이지 정도이지, 여행을 대체할만한 매력을 뿜어낼 수 없다. 여행이 주는 폭넓은 경험이 빠져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여행산업이라는 것은 숙박, 교통, 레저 등 다양한 산업군들이 모여서 종합적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여행산업 자체를 부양시키기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여행지의 모습을 재현한 디지털 트윈의 메타버스는 대체재보다는 보완재로 쓰일 것이다. 해당 여행지에서 움직일 동선을 미리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주에 간다고 하면 2박 3일의 일정을 짜놓고 해당 날짜를 찍고 가상 모형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경주 메타버스에서는 해당 날짜의 일반적인 교통 사정과 인파, 지역행사 등 여러 가지 빅데이터를 고려해서 시뮬레이션 결과를 알려주고, 원할 경우 AI가 큐레이션 해주는, 보다 더 효율적인 동선을 제시할 수도 있다.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불국사 경내를 메타버스로 구현해 놓고, 불국사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게이밍적 요소와 현실 연계 보상 설계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여행자들을 메타버스에 들어오게 할 유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산업적으로 봤을 때도 굳이 여행자들을 메타버스로 들어오게 할 이유가 없다. 여행 전에 메타버스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해당 여행지에 대한 여행 욕구를 자극하고 반드시 방문해서 소비를 하게 만들 이유를 주기 위해서여야 한다.

그래서 메타버스에서 보물찾기를 한다거나 퀴즈를 푼다거나 (이것을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며 같이 하게 해도 좋다) 하는 식으로 게이밍적 요소를 넣고, 해당 게임에서 성취가 나오면 보상 토큰을 지급하는 메타버스에서의 액션을 설계해야 한다. 이 토큰은 해당 지역의 상품권으로 기념품이나 식당, 숙박지에서 쓰일 수 있게 현실과 연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어서 토큰 모으는 재미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느 정도 토큰이 쌓이게 되면 해당 관광지에 가서 그 토큰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해당 관광지에 방문하게 되는데, 보통 해당 지역에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토큰 이상의 소비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메타버스가 만들어 내는 커뮤니티의 힘

또 하나 메타버스를 통해 관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메타버스는 실시간으로 아바타들이 존재하지만, 사실 아바타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 시국에 일본에서는 지역 여관들이 온라인 숙박 프로그램을 개설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자기 집에서 자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온라인 숙박 프로그램들은 매진을 기록했다. 매진의 이유는 이 프로그램 안에 들어 있는 저녁 파티 시간이었다. 가벼운 연결과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이 외로운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유인이 된 것이다.

이것을 여행 메타버스에 적용해서 지역 테마의 메타버스 숙박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 메타버스 안에서 ‘별빛 아래 서울에서 하룻밤’이라는 온라인 숙박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접속을 해서 저녁 시간에 각자의 집에 음식과 마실 것을 차려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서울이라는 테마 아래 모인 만큼 이들 이야기의 주제는 서울, 한국일 것이고, 그리고 한국 문화일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더 끌어내고, 그것이 결국 한국 방문과 연결될 수 있다. 또한 같이 숙박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서울에서 한번 만나자고 ‘도원결의’를 할 수도 있다. 만약 프로그램 자체를 ‘202X년 가을에 서울 방문하고 싶은 사람’하는 식으로 묶어 준다면 이런 효과는 배가 된다.

서울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자기 혼자일 때면 사실 여행 계획만 하고 안 갈 수도 있는데, 메타버스 안에서 만난 친구들과 서울에서 보자고 약속을 한다면 서울에 대한 여행 욕구는 더욱 증대할 것이다. 그리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인 여행객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온 여행객들이 조금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 이런 경향은 여행 비즈니스로 보자면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다.

꼭 온라인 숙박이 아니더라도 여행 메타버스 안에서 관심 있는 여행지나 테마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해주고 커뮤니티를 조직해 주면 결국에는 여행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이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초월 여행으로서의 메타버스

관광의 보완재로서의 메타버스는 그 밖에 지역 상품이나 관광지 상품의 메타버스 커머스 등 더 다양하게 연결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생각해 볼 것은 여행 메타버스가 대체재로서는 가능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여행이 주는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다만 여행이 주는 정보를 대체하거나 실제 여행이 줄 수 없는 경험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 이미 영국에서 나온 교육 솔루션 중에 체험학습을 대체하는 메타버스가 있다. 학교에서 삼각주나 화산 같은 것을 배우면 실제로 삼각주의 대표적인 지역인 나일강으로 가보거나, 화산하면 생각나는 하와이의 킬로우에아 화산으로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유적지를 갈 때는 실제 여행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메타버스는 공간 이동뿐 아니라 시간 이동도 가능한 그야말로 초월공간이다. 화산을 가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으로 갈 수 있다. 지금이 아닌 서기 79년으로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폼페이가 화산으로 멸망하는 것을 생생히 지켜 볼 수 있다. 화산의 심각한 영향력을 이보다 더 체험적으로 배우긴 힘들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교육 솔루션일 것 같은데, 이런 메타버스에서 줄 수 있는 경험들을 AR로 옮겨서 해당 여행지에 가면 볼 수 있게 만든다면 어떨까? 진주성에 가서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에서 일어난 왜군과의 싸움을 AR을 통해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다면 해당 관광지에 대한 매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나왔던 장소에 와 본 느낌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실제 관광지가 아닌 곳이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  에베레스트산 꼭대기, 이집트 피라미드의 내부 석실, 광화문 누각 위 등. 실제로 일반에게 개방하지는 않은 관광지가 아는 곳들을 메타버스에서는 방문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실제 현실적인 여행의 경험을 초과하는 경험을 여행 메타버스가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체재처럼 실행되는 여행 메타버스들도 따지고 보면 실제적으로는 그 주변 관광지들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에서 시간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화산 폭발로 불탔던 폼페이로 시간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메타버스에서 나와 지금의 폼페이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자면 시간여행이나, 험지여행처럼 대체재로 보였던 메타버스 여행도 현실 여행의 보완재로 동시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 메타버스는 현실 여행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여행 메타버스는 실제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경험의 폭을 늘려서 여행의 매력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트윈으로 관광지를 구현하는 여행 메타버스의 기본 설계는 얼핏 여행을 대체하려는 시도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여행과 짝을 이루어서 여행경험을 극대화 시켜주는 여행 비즈니스의 아주 매력적인 협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여행 비즈니스와 잘 연계시킬 것인가의 꼼꼼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시한 교수] 이시한 교수는 연세대학교 박사 수료 후 성신여자대학교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인 ‘지식 탐험가’다. 다수의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메타버스의 시대’, ‘NFT의 시대’,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 등이 있으며 현재 메타버스 전문 뉴스 미디어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metarism@galaxyunivers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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