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래원, 이종석·차은우 연기를 계속 모니터한 이유
"제가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제가 맡은 역할,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면, 최근에는 내가 빛나기 위한 연기보다 극의 스토리를 위한 연기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를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굉장히 큰 이야기거든요. 배우를 꽤 오래 했는데, 이제야 좀 저를 내려놓고 전체에 비중을 두고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 김래원이 말했다. 지난 1997년 MBC 드라마 '나'로 데뷔했으니, 약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길을 걸어왔다. 그 길 위에서 김래원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배웠고, 조금씩 변화했다.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데시벨' 역시 '배우 김래원'의 길 위에 있다. '데시벨'은 소음이 커지는 순간 폭발하는 특수 폭탄으로 도심을 점거하려는 폭탄 설계자(이종석)와 그의 타깃이 된 전직 해군 부함장 도영(김래원)이 벌이는 사운드 테러 액션 영화다.
김래원이 맡은 도영은 과거의 아픔을 가진 인물로 테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다. '데시벨'에서 폭탄 설계자는 끊임없이 그를 위협하고, 사람들이 많은 워터파크, 축구장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도 폭탄을 설치해 긴장감을 더한다. 김래원은 '데시벨'에서 그 인물처럼 임했다. 수중촬영, 카체이싱, 온몸 액션, 낙하 액션 등을 모두 대역이나 CG의 도움 없이 거의 99%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고생은 많이 했는데요. 저는 '데시벨'의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과장되지 않은 표현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영상으로 담길 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과장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배우와의 호흡, 극의 흐름 속 균형 등을 신경 쓰며 작업했습니다."
"사실 촬영 전에 협의가 됐었어요. 부상도 부상이지만, 동작의 디테일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선택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위험은 안 가리고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화려함이냐, 진정성이냐. 이 두 가지를 놓고 선택했어요. 마지막에 (이)종석이랑 온몸 액션 장면이 있는데요. 액션보다 감정이 담겨야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액션 팀에서는 단순히 화려하게 표현해주실 거라고 생각했고요. 화려함보다 감정을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제가 직접 하게 됐고요. 카체이싱 장면은 어찌 보면 얼굴도 잘 안 보이는데요, 직접 부딪히고 사고를 내야지 긴박한 감정이 전달될 것 같았어요. 실제로 촬영이 끝나고 차에서 불꽃이 튀고 범퍼가 다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데시벨' 속에는 도영이의 하루가 담긴다. 물론 그 하루 동안 도영이가 떠올리는 과거의 기록도 있긴 하지만, 쉼 없이 턱까지 몰아치는 감정을 김래원은 직접 '액션'을 소화하며 표현해냈다. 김래원은 "마지막 선택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요"라고 '데시벨'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보다 작품의 흐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음을 전했다.
"미숙하지만,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예전과 달리,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아요. 계속 감독님께 (이)종석이랑 (차)은우의 촬영본을 보여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이종석, 차은우가 연기를 저렇게 하네?'라고 생각하며 계속 지켜봐요. 이 흐름이면 제가 다음 리액션을 '이 정도가 적절하겠다'라고 생각해서 연기를 해요.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현장에서 소리를 크게 지르면, 제가 더 빛날 수 있어요. 그런데 도영이의 감정은 그렇지 않거든요. 감정의 적정선을 맞추기 위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계속 지켜보게 되는 거죠."
"제가 제작사 대표님께 말씀드려서 잠수함에 있는 배우들끼리만 함께 식사 자리도 만들었어요. 저로서는 그렇게 이끌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배우들 모두에게 다 중요한 영화이고, 해야 할 몫과 빛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영화에만 집중하자. 믿고 따라와 달라'라고 부탁했어요. 정말 다 열심히 했어요. 한 컷밖에 안 나오는 친구들도 온 힘을 다해 연기를 했어요. 그 친구들 역시 '굉장히 특별하고 좋았다'라고 이야기해줬어요. 도영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도영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간 것 같아요. 덕분에 좋은 장면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오랜 시간 한결같이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다. 과연 10단계까지 있다면, 지금의 김래원은 몇 단계일까.
"6~7단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꼭 10단계까지 이르라는 보장도 없죠. 저에게 7단계가 끝일 수도 있고, 8, 9단계가 남아있을 수도 있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주일 전쯤 오랜만에 한석규 선배님이랑 통화를 했거든요.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 지금 제일 좋을 때'라고요. '재능이 많고 훌륭한 배우야. 지금까지 연습한 거야. 정말 잘 한 번 해봐라'라고 두 번, 세 번 말씀해주셨어요. 선배님의 말씀에 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좋은 배우의 의미도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그건 자기만의 기준인데요. 저는 매 작품, 장르, 감독님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요즘 저는 '제가 보이기 위한 연기를 하느냐, 극이 재미있기 위한 연기를 하느냐'를 고민해요. 그리고 그 비중이 예전과 바뀐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닌 김래원의 일상에도 달라진 점이 있을까.
"촬영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취미 생활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그나마 나아진 건, 예전에는 지방 촬영을 석 달 정도 하면, 서울에 핸드폰을 두고 가서 아예 켜보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핸드폰은 켜놓고 있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