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CJ ENM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소영(이지은, 아이유)이 걸어간다. 도착한 곳은 베이비 박스 앞. 소영은 데려온 아기를 박스 안에 넣지 않고 그냥 그 앞에 내려놓고 오는 비를 다시 다 맞으며 돌아간다. 베이비박스 앞을 관찰하던 형사 수진(배두나)은 아기를 박스 안에 넣어둔다. "버릴 거면, 낳지를 말라고"라는 투덜거림을 보태면서. 베이비박스 안으로 들어간 아기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품으로 옮겨진다. 베이비박스 안에 담긴 '우성아 꼭 데리러올게'라는 쪽지를 통해 처음 이름이 불린다.

그런데 우성이라는 이름을 부른 두 사람은 사실 '브로커'다. 돈을 받고 고객에게 아기를 입양을 보낸다. 다음날 아기에게 돌아온 소영은 시설에 우성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는 동수에 의해 우성이의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여정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수진과 이형사가 뒤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동수가 자란 보육원에서 만난 7살 아이 해진(임승수)까지 합류, 총 7명의 무리가 각기다른 목표를 담은 두 대의 차로 움직인다.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사진기자,pr.chosunjns@gmail.co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연출했다. 하지만 '브로커'에 한국의 속도만은 입히지 않았다. 이들의 여정은 부산부터 영덕, 울진, 그리고 월미도에 이르기까지 뒷문이 고장 난 차량의 속도로 진행된다. CG(컴퓨터 그래픽)나 특별한 장치도 없었다. 낡은 봉고차가 지나가는 속도 그대로를 밖에서 담았다. 터널을 통과하는 KTX에서 진행되는 상현과 소영의 대화 역시 실제 타이밍을 맞추느라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며 촬영을 진행했다.

보통 영화 촬영은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로케이션, 배우 스케줄 등을 고려해 대본 순으로 촬영되지 않는데, '브로커'는 대본의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됐다. 어쩌면 비효율적이고 우직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눈에 도드라지는 것은 각기 다른 목표로 만난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 소영(이지은), 해진(임승수), 우성의 거리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던 이들은 서로를 통해 위로와 용서를 받는다. 그리고 이를 스크린 밖에서 지켜보는 관객에게까지 그 온도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몰아붙이지 않기에 깊이 와닿는 온도다.

그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익숙한 듯 낯설다. 송강호는 영화 '기생충'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자상함과 따뜻함, 그리고 위트를 보여준다. 어쩌면 송강호가 가장 잘하는 것,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송강호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굳이 뭐 혼자 다 할 필요가 없어"라는 상현의 말은 소영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영들에게 전하는 말 같이 느껴진다. 더불어 순간순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송강호가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안고 자상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걸지만, 아기를 팔아버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송강호의 선악이 공존하는 한 장면이 출발점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송강호는 늘 그렇듯 가장 믿음직한 기둥이 된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CJ ENM

아이유는 소영 역을 맡았다. 'so young(정말 젊은)'이라는 뜻을 가진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소영은 23살의 나이에 아이를 갖고, 아이를 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다. 아이유의 모습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빅 팬이었다고 밝힌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이지안과도 닮아있다. 버려지고, 상처받고, 닳고 닳을 대로 살아온 인물인데,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을 만난다. 아직 끝을 바라보기엔 너무나 젊은 소영이 각기 다른 사람들 속에서 받는 위로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다소 직접적인 대사이자, 소영이 전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는 아이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런 울림을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사이를 동수(강동원), 수진(배두나), 이형사(이주영), 해진(임승수), 그리고 우성 역의 아기까지 촘촘히 만든다. 엄마에게 버려진 아픔이 있는 동수, 현행범 체포를 목표로 둔 수진, 선배 수진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사회를 이해하기 힘든 이형사, 입양되기엔 7살이 되어버린 해진은 '브로커' 여정을 통해 결국 하나의 목표점에서 마주한다. 태어난 아기 우성을 위한 것. 각기 다른 생각, 각기 다른 세대, 각기 다른 성별, 각기 다른 상황 속의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시선은 이들을 천천히 쫓는다. '브로커'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그런 시선이 아니었을까. 예를 들면 동수(강동원)와 소영(이지은)이 창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소영의 머리카락을 계속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는 우성이의 작은 손 같은 장면 말이다. 가장 높고 화려한 관람차 안에서 정작 생각하고 있던 것은 세차장에서 잘못 연 창문에 물이 들이닥쳐 어쩔 줄 몰라 함께 웃었던 그 순간이라는 작은 기억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CJ ENM

'브로커'가 칸에서 공개된 후 호불호가 갈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어찌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한국에서 공개되어도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 이어질 것 같기도 하다. 대작이라 불리는 한국 영화 속에서 선명한 피를 묻히고, 선과 악, 가난과 부, 선과 악의 뚜렷한 선을 그려낸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봉고차를 타고 '브로커'의 여정에 임한다. 카메라는 때로는 배우들보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사람의 시간까지 품고 있는 보육원의 벽, 덜덜거리는 봉고차, 내 맘과 다르게 빠르게 어둡고 밝아지는 터널 안 같은 모습으로 시선을 향한다. 그 시선과 속도를 판단하는 몫은 역시 관객 각자에게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를 준비하며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고 시설에서 자랐는데, 그 중 몇몇 아이들은 '과연 나는 태어나길 잘한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갖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너 같은 건, 나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안팎의 목소리에 맞서서 강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 나는 어떤 영화를 제시할 수 있을까. 작품 제작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언제나 이 물음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브로커'는 똑바로 생명과 마주하고, 등장인물의 모습을 빌려, 나 자신의 목소리를 똑바로 전달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기도와 같은, 바람과 같은, 그런 작품이다"라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른다. 우성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나의 마음. '브로커'는 그렇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그 누구도 가치없는 생명은 없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오는 6월 8일 개봉 예정.

영화 '브로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집·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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