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헤매였던 길에 있었던 아름다움…'새해전야'
처음 만난 길 앞에서 조금 헤메이기도 한다. 목적지가 분명 가까운 것 같은데 자꾸만 돌아가고 있는 느낌. 초조하다. 하지만, 저 멀리에서 목적지가 흐릿하게 보일 때 오는 쾌감이 있다. 아마도 조금 헤메였던 그 시간이 만들어준 행복일지도 모른다. 영화 '새해전야' 속 인물들은 새해를 앞두고 조금 헤매였던 그 시간을 보여준다.
영화 '새해전야'는 새해를 맞기 전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네 커플, 그리고 한 사람을 더 보탠 아홉 사람의 일주일이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딱 하나다.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
지호(김강우)는 이혼 4년차의 강력반 형사다. 강력반에서 좌천돼, 원치않게 재활 트레이너 효영(유인나)를 이혼 소송 중인 남편으로부터 보호하는 신변보호를 맡게 된다. 그런데 그의 곁에서 자신의 지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강해보인다, 완벽해보인다'는 '보인다'에 더 큰 방점이 찍힌 말임을 이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진아(이연희)는 6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최시원)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홧김에 가장 먼 곳, 아르헨티나로 무작정 떠난다. 그곳에서 와인 배달원 재헌(유연석)을 만난다. 낯선 곳에서 조금 헤메이고, 조금 두렵지만 낯선 이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삶의 터전이 아닌 낯선 곳에서 살아갈 '힘'을 깨닫기도 한다.
작은 여행사 대표 용찬(이동휘)은 중국인 예비신부 야오린(천두링)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용찬은 부족한 주머니 사정으로 야오린에게 작아진다. 그리고 회사에 문제가 터지기까지 한다. 야오린은 무슨 일인지 자기에게 얘기해주지 않는 예비신랑 용찬에게 서운하기만 하다. 용찬의 누나이자 솔로인 용미(염혜란)는 그런 야오린에게 힘이 되어주려 한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번역기보다 더 큰 언어를 발견한다. 그것은 진심과 그것이 담긴 눈빛.
래환(유태오)은 다리에 장애가 있다. 그런 그가 꿈을 꾸게 된 것은 원예사인 연인 오월(최수영)이 전한 스노보드 덕분이었다. 패럴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까지 된 래환은 오월과 행복한 결혼을 꿈꾸지만, 세상의 눈은 두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네 커플, 아홉 사람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러브 액츄얼리'처럼 전개해 나간다. 관객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곳으로든 쉽게 공감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믿음직한 배우들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염혜란, 최수영, 유태오는 관객이 들어올 길을 훌륭하게 이끈다.
홍지영 감독은 네 커플을 통해 각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관객은 '새해전야'를 보며 '이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호(김강우)와 효영(유인나)은 "어른스러운 사랑"을 보여준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다고 아픔에 의연해지는 것이 아니다. 겉모습은 완벽하게 보이려고 하지만, 속은 여전히 여리고 상처를 품고 있다.
재헌(유연석)과 진아(이연희)에게는 "자유지향의 커플"을 보여주려 했다. 홍지영 감독은 "아르헨티나가 제 3자 요인이었다. 로망으로 가진 여행의 이상같은 곳이지 않나"라고 밝혔다. 해보고 싶은 것들을 재헌과 진아가 대신 실컷 해준다. 잘해보려 애쓰다 넉아웃이 되어버린 사람도, 잘해보려 애써도 한계에 부딪히기만 하는 것 같은 비정규직의 현실도 없는 그곳에서 현실로 돌아올 힘을 얻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느껴지는 어딘가 달라진 듯한 에너지, 이는 '내면의 변화'가 아닐까.
용찬(이동휘), 야오린(천두링), 용미(염혜란)은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홍지영 감독은 세 사람에게 "각자 입장에서 배려하다가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있다. 주장하고 이기적인 사랑보다 배려하고 미안해하다가 일이 커져버리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래환(유태오)와 오월(최수영)은 "다양성의 이야기"를 한다. 래환을 선수로 바라보기보다, 그가 가진 '러브 스토리'를 브랜드 홍보에 이용하려는 에이전시의 시선. 이를 통해 홍지영 감독은 "불필요한 색안경을 끼고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풋풋하고 젊고 건강한 커플들, 힐링커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결혼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은 '새해전야' 역시 상큼하고 풋풋한 색으로 114분을 가득채웠다. 네 커플, 아홉 명의 이야기가 담기기에 다소 감정이 급작스럽게 전개 되거나,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코로나 19로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북적임과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배우들이 보여주는 사랑스러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새해를 일주일 앞둔 네 커플, 아홉 사람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거리에 가득찬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이야기까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북적이는 명동 거리, 타종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찬 종각역 사거리, 이런 일상이 아득해진 이유는 아닐까. '아, 우리 이렇게 새해를 맞았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아홉 명의 캐릭터들은 공감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다. 모두다 새해에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 한줄평 : 영화 속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지난 '새해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