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자매', 삶보다 더 큰 이야기가 있을까
오남매 중 셋째였던 나의 엄마는 늘 걱정이 많으셨다. 언니 걱정, 동생 걱정. 엄마의 한숨을 들으면 모든 것이 다 큰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커보니, 그 한숨들이 때로는 살아내는 힘이었다.
영화 '세자매'는 제목처럼 세자매의 이야기를 담았다. 외국 영화 '작은 아씨들'처럼 성장하는 자매들 속 아기자기한 이야기면 좋겠는데, '세자매'는 예쁘기보다 민낯에 가깝다. 세자매 속에는 이미 성장한 자매들이 담겨 있다. 각자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고 살아간다. 그 삶 속에서 때로는 서로를 잊고, 때로는 서로가 귀찮고, 때로는 서로가 그립다.
'세자매'의 시작은 뒷모습이다. 어딘가로 달려가는 두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담겨 있다. 자신의 정면을 바로 보기보다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 같다.
첫째 희숙은 꽃집을 한다. 삶은 꽃집과는 정반대다. 집에 잘 안들어오는 남편에겐 돈을 해줘야하고, 몸에 장난처럼 문신을 새기고, 내 말은 듣는 척도 안하는, 어떤 뮤지션에게 홀려있는 딸에게도 용돈을 쥐어줘야한다. 아, 둘째 미연에게 빌린 돈도 있다. 꽃집에 오는 처음 만난 손님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마음 붙일 곳이 없다. 하지만 항상 '미안'하고 그래서 항상 웃어버리는 언니다.
둘째 미연은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어엿한 아파트에 사는 교수 사모님이다. 막내딸이 식사기도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게 고민이랄까. 막내 딸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간다. 성가대 지휘자로 예배와 성가대 연습까지 하루종일 교회에 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무결점의 미연에게도 속사정이 있다.
대학로에서 극작가였던 셋째 미옥은 아들이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도 예술혼은 죽지 않는다. 노란 머리, 밥대신 과자, 그리고 알코올. 불안정한 그의 삶은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계속된다. 거침없는 미옥은 패션부터 모든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단편적인 조각들이 교차한다. 그 조각이란, 딱히 쓸모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니랑 그때 왜 뛰어갔지, 언니랑 '타이타닉'보고 온 식당, 이런 소소한 조각들은 영화가 전개되며 자리를 맞춰간다. 세 자매를 비롯한 온 가족이 아버지 생신을 밎아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서다. 애써 꾹 참고 살아오던 나를 소리지르게 하는 유일한 사람, 그건 가족인지도 모른다.
배우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가 곪고 곪아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세자매를 보여준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나 하는 염려는 굳이 저들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굳이 내 가족 중에 걱정끼치는 이가 없어도 공감을 이끌어낸다. 아마 저 배우들이 "영구없다"를 해도 뭉클함을 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는 선우엄마('응답하라 1988' 속 김선영)도 한공주('오아시스' 문소리)도 미스봉('베테랑' 속 장윤주)도 없다. 전작 속에서 강렬한 캐릭터로 각인된 여배우들은 어딘지 불편한듯한 편한 옷을 입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듯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드라마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처럼. 사랑의 모습이 다르다고 내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 처럼말이다.
그렇기에 눈물은 관객의 몫이다. 삶의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세자매를 115분 여의 시간동안 바라본 관객들은 각자의 질문을 안고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우리 이제 자주보자"는 익숙하지만 늘 지켜지지 않던 그 말을 되뇌이면서 가장 가까운 엄마를 언니를 동생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세자매'를 연출한 이승원 감독은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결국 모든 걸 관통하는 한 가지는 정작 자신은 그 안에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세심한 캐릭터 디자인, 그보다 더 섬세한 배우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연기가 이를 완성해냈다. 15세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5분.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