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제철이 있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계절별 전통주
봄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는 봄에는 곱디고운 봄 술인 ‘두견주’와 ‘이화주’를 마셨다.
‘두견주’는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두견화’에서 이름을 딴 술이다. 봄철 피는 진달래 꽃잎을 찹쌀에 섞어 빚기 때문이다. 달콤하면서도 가벼운 산미가 있는 두견주는 향기가 일품이며, 전통 발효주치고는 높은 알코올도수(18%)에도 불구하고 맛이 부드럽고 감칠맛을 낸다.
두견주는 1천 년 전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이 면천에서 병을 앓자 그의 딸 영랑이 백일기도를 드린 후 두견주를 담아 마시게 해 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두견주는 ‘효도주’, ‘천년의 술’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의 만찬주로 선정되며 ‘평화주’라는 이름을 하나 더 덧붙이게 되었다.
‘이화주’는 살과 누룩으로 빚는 탁주지만, 배꽃이 필 무렵 빚는다고 해서 ‘이화’라는 이름을 얻은 술이다. 예로부터 양반가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귀한 술인 이화주는 쫀득한 질감으로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요거트처럼 새콤달콤한 풍미에 부드러운 감칠맛이 어우러져 디저트로 잘 어울리는 술이다.
여름
여름에는 음식이 쉽게 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독보적인 발효방법으로 가마솥더위에도 변하지 않는 ‘과하주’를 빚어 마셨다. 과하주는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혼양주로, 무더운 여름을 탈 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이다.
과하주는 상온에서 금세 상하는 ‘발효주’와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지만 자주 마시기는 부담스러운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술이다. 찹쌀과 누룩, 물을 넣고 발효시킨 술에 따로 빚어 증류한 소주를 넣고, 재차 발효, 숙성시켜 완성하는 과하주 만드는 법은 세계에서 유일한 최고의 양조기술이라 할 수 있다.
과하주는 지역과 재료에 따라 맛과 향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오래 숙성한 브랜디같이 그윽한 빛깔과 부드러운 맛, 뛰어난 향을 자랑한다. 전남 영광에는 과하주를 마시기 위해 지방 수령이나 관원들이 승진을 마다하고 영광으로 오기를 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을
햇곡식이 나는 가을에는 ‘신도주’와 ‘국화주’를 마셨다.맑고 밝은 빛깔과 과일처럼 은은한 향, 깨끗한 맛이 일품인 ‘신도주’는 그 해의 첫 수확물인 햅쌀을 이용해 빚는다. 처음 수확한 쌀 중 가장 실하고 좋은 것만 골라 담근 신도주는 추석의 차례상 등에 올리는 귀한 술로 오직 가을에만 맛볼 수 있었다.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득한 ‘국화주’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 마신 가을의 대표적인 계절주다. 은은한 국화 향이 찹쌀의 엷은 단맛을 만나 수묵담채화 같은 매력을 내는 국화주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약용주로 애용되었다. 이외에도 국화주는 식욕증진·건위(健胃)·정장(整腸)·피로해소·녹내장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
겨울에는 엄동설한의 고난을 이기고 만개한 매화를 넣은 ‘매화주’를 마셨다. 굳은 의지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는 선비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꽃으로, 그 향기가 청아하고 기품 있어 술은 물론 차로도 널리 사랑받아왔다. 단원 김홍도는 그림을 요구하는 돈 3천 중 2천을 떼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 말을 사다가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매화주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매화주는 매화 꽃잎을 부재료로 넣어 발효한 것을 비롯해 익은 술에 매화를 띄어 마시는 것, 소주 등에 매화꽃을 넣은 주머니를 넣어 향을 스며들게 한 것 등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