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순국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1902년 9월 28일 향년 19세로 옥사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재학 중 1919년 3·1 운동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가 학교 문을 닫자 고향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4월 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앞장서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위 현장에서 일본 헌병이 쏜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유관순은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하여 범죄를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모진 고문에도 협력자와 시위 가담자를 발설하지 않았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1심재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유관순은 이에 불복해 항소하고,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후 상고를 포기했다.
1920년 4월 28일에 영친왕이 일본 왕족 이방자와 결혼하자 특사로 형이 1년 6개월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 옥 안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해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구타를 당해 형기를 3개월 남긴 1920년 9월 28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