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가 가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
은행나무는 전체 도시 가로수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가로수지만, 가을이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바로 은행 열매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와 강한 얼룩 때문이다. 은행 열매 악취는 겉껍질에 함유된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 성분이 원인으로, 해마다 많은 민원을 발생시키고 있다. 각 지자체는 매년 반복되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고, 열매 조기 채취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은행나무 열매를 관리하기엔 인원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실 은행 열매가 처음부터 천덕꾸러기는 아니었다. 은행나무가 도시의 대표 가로수로 정착한 1990년대만 해도 은행 열매는 오히려 귀한 대접을 받는 존재였다.
은행나무는 ‘대기오염과 병충해에 강해 유지비용이 저렴하고, 꽃가루 알레르기도 일으키지 않는 데다,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예쁜 풍경을 만들어준다’는 이유로 완벽한 가로수 수종으로 여겨졌고, 이때는 가을에 풍성하게 맺는 은행 열매도 은행나무의 단점이 아닌 일거양득의 장점이었다.
1993년 10월 11일 자 동아일보에는 ‘은행알이 술안주로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가로수 은행알 서리가 극성’이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1995년 9월 27일 자 경향신문에는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채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기 위해 망치나 몽둥이 등 나무를 두들겨 껍질이 벗겨지게 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민의 공공재인 은행 열매를 몰래 따는 행위를 경계하기도 했다.
실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 열매의 악취보다는 은행 열매를 서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채 익지도 않은 열매를 서리하는 사람들 덕분에 가을에 은행나무 열매를 밟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 열매 냄새가 새로운 도시 문제로 부각한 것은 은행 열매를 줍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다. ‘은행을 비롯한 가로수 열매가 대기오염과 중금속에 오염됐을 확률이 높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2008년 12월 가로수 부당 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된 이후 은행 열매를 무단으로 채취하는 사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사전 신청을 받아 은행 열매 채취를 허락하고 있지만, 가로수 은행 열매는 상품성이 없어 채취 희망자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수년간 답을 찾지 못하고 새로운 도시문제로 대두된 은행나무 열매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