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화차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남자는 형사인 먼 친척을 찾아 여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남자의 친척은 여자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자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름, 나이, 가족 등 여자의 모든 것이 다 가짜였던 것이다. 더구나 여자의 뒤에는 드러나지 않은 살인 사건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다. 과연 남자가 사랑한 여자는 누구이며, 어떤 진실이 숨겨진 것일까?
소설 ‘화차’는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으로, 카드빚, 담보대출, 사채, 개인파산 등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 초 일본 사회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두 여자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자본주의의 허상을 날카롭게 꼬집는 소설은 지금까지 사회파 미스터리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화차’는 2012년 한국에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소설의 기본 얼개를 차용했지만 소설과는 다른 변주로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화자다. 소설의 화자는 죽은 아내의 먼 친척으로부터 사건의뢰를 받은 형사 ‘혼마’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적한다. 하지만 영화는 사건 당사자인 문호(이선균 분)와 경선(김민희 분)의 모습을 통해 훨씬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각 인물이 보여주는 감정 역시 폭발적이다. 덕분에 영화는 소설보다 사회 비판의 목소리는 약하지만, 훨씬 강렬하게 관객을 흡입한다.
영화의 결말 역시 소설과는 다르다. 열린 결말을 선택한 소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신조 쿄코가 어떤 단죄를 받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는 비극적인 경선의 최후와 문호의 절규로 이야기를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미처 맛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충분하다.
이외에 20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일본의 모습과 현재의 한국 사회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는 것, 패셔니스타인줄만 알았던 김민희의 연기를 눈여겨보게 된다는 것도 영화가 주는 놀라움이다.
여러 면에서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소설과 영화지만, 기존의 스릴러와는 분명히 차별화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 ‘화차’.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을 담은 수준 있는 스릴러를 찾는다면 소설을, 보다 오락적인 스릴러를 찾는다면 영화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