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읽을만한 책] 짧은 느낌, 긴 사색
정진홍 저 | 당대
에세이는 무거운 수필, 미셀러니는 가벼운 수필이라고 가른다면 이 책에 실린 글은 에세이의 범주에 속한다. 에세이도 미셀러니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쓰는 산문이라는 점은 같지만 에세이는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수필이고, 미셀러니는 일상생활의 느낌이나 체험을 담는 주관적인 수필이다. 만필(漫筆), 만문(漫文), 상화(想華)라는 단어는 수필과 동의어인데, 글자의 뜻으로 나눠 보면 상화가 중수필에 가깝고, 만필과 만문이 경수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정진홍의 글은 붓이 가는 대로 쓰는 수필(隨筆)보다는 생각의 정점에 이르는 상화(想華)라는 단어가 더 근사하다. 상화로 가기 위해 그는 ‘끝없이 묻고 깊이 살펴 알고자 하는’ 학자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맛을 느끼기까지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주제도 간단치 않다. 죽음에 대해 말한다. 삶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죽음에 대해 사색하라, 제대로 살아야 보람 있는 죽음과 만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회에 대해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이냐’ 보다는 ‘왜 사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이들을 철저하게 타락시켜야 한다’는 꼭지가 범상치 않다. 학문에 대해 말한다, 책을 다 믿지 마라, 비학문적인 학문을 동경하라고 조언한다. 종교에 대해 말한다. 한편으로는 종교를 위한 종교로 세상을 철저히 외면하고, 한편으로는 물신주의의 세속으로 빠져드는 종교에 대해 깊이 성찰하자고 한다. 부동산 거간꾼이 아니라 집이라는 매개를 통해 복과 덕을 권유하는 복덕방 영감님 같은 성직자 상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촌철살인이다.
‘짧은 느낌, 긴 사색’을 위한 책 제목을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이 책의 백미(白眉)이다. “삶에서 생각을 비롯하게 하는 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이 사물을 지각하면서 그 지각에서부터 사색이 지각을 잇습니다. 느낌이 아무리 쉽고 편해도 이를 넘어서야 하고, 아무리 사색이 지루하고 힘들어도 이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느낌과 사색, 곧 감각과 이성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