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 한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빠져나와 민펑(民豊)에 도착하자  무사히 사막을 종단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민펑의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였다. 길게 늘어선 단층 흙벽돌 집, 수염을 기른 남자들과 두건을 쓴 여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타클라마칸 남쪽의 최대 도시인 허티옌(和田)까지 갈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좀 더 작은 도시를 보아야 웨이우얼족의 삶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민펑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민펑 거리

저녁시장에 들어서니 양고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숯불 위에 지글지글 굽고 있는 양고기 꼬치구이가 나를 유혹한다. 한 꼬치 사서 입에 물고는 유유자적 시장거리를 기웃거렸다. 각종 과일, 옷가지, 식료품, 건과류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과일들은 적과(摘果)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작고 볼품없다. 어쩌면 이게 진짜 무농약 유기농 과일일지도 모르겠다. 신강의 과일 중 명물은 역시 하미꽈와 티옌꽈(甛瓜)이다. 하미꽈는 럭비공처럼 생겼고, 티옌꽈는 둥글게 생겼다. 가게 주인들은 멍석 위에 과일을 산처럼 쌓아 놓고, 잘 익은 것 하나를 잘라 내밀며 맛이 좋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손님을 부른다. 그 중 한 청년의 웃음이 유난히 멋져 보여 호기심을 보이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과일장사

과일을 고르는데 한쪽 구석에 흰색 모자를 쓴 노인이 혼자 쪼그리고 앉아 티옌꽈를 먹고 있다. 슬쩍 사진 한 장 찍고 나서 노인 옆에 앉아 맛이 단지를 물었더니, 알아들었는지 먹어보면 알 거 아니냐는 듯 말없이 한 조각 잘라 건네준다. 역시 시골 인심이 좋기는 좋다. 한 입 베어 물고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또 권한다.
잘 익은 것으로 세 개를 골라 하나는 내가 갖고, 두 개는 노인에게 선물이라고 주었다. 주인도 많이 팔아 좋고 노인도 뜻하지 않은 나의 선물에 좋아하니 나 또한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런 게 일석삼조라는 것이 아닐까?

과일 먹는 노인

미리 예약한 식당까지 당나귀 택시를 타고 갔다. 남강 지역의 소도시에서 당나귀가 끄는 수레는 짐을 싣는 용도 외에 택시의 역할도 한다. 운전사는 방향을 바꿀 때마다 기다란 회초리로 가고자 하는 쪽의 당나귀 옆머리를 톡 건들기만 하면 된다. 참으로 간단한 조작법이 아닐 수 없다. 수레에는 여럿이 함께 탈 수 있어 거의 봉고차 수준이다. 방울 소리를 울리며 경쾌하게 달리는 당나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거리 풍경은 조금 전 걸어가면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이국적이다. 식당에 도착하니 처음 탈 때와는 다르게 요구하는 금액이 다르다. 애교에 가까운, 많은 액수가 아니라 주기는 주었지만 여기도 바가지요금이 있으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당나귀 택시

식사를 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미 시간은 11시가 넘어 거리가 암흑이다. 식사 전 거리는 제법 흥청거렸는데 갑자기 죽음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사막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기묘한 소리까지 들려오니 어째 기분이 으스스하다.
그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도 하니 이국적인 웨이우얼족 아가씨에게 발안마를 받자는 일행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하고는 어렵게 안마소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망스럽게도 한족 여인들이다. 발안마를 신청하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연신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한참 후 몇 아가씨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들어오더니 다 늦은 시간에 무슨 발안마를 하냐며 면박을 준다. 발안마를 하는 아가씨의 손놀림이 완전 초보이다. “발안마 할 줄 알아요?”하고 물었더니, 황당하게도 “처음인데요.”라고 태연하게 응수한다. 발안마가 끝나고 계산을 하면서 “발 잘 닦았습니다.”라고 뼈있는 농담을 건네자 계면쩍게 웃으며 “돈 받기가 미안한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민펑에서 만난 모자

밖으로 나오니 아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한 치의 앞도 분간하기 힘들다. 마치 노란 연막탄을 터뜨린 것 같다. 입자가 고운 모래들이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늘에서 쏟아진다. 불빛도 없는 도시 전체가 뿌옇고 누런 모래 빛으로 덮였다. 재빨리 모자를 쓰고 입을 가리고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짐을 정리하는데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그 안마소에 두고 온 것 같다. 다시 호텔문을 나서니 동네가 온통 모래로 덮여 눈이 내린 듯하다. 눈을 뜨기도 숨을 쉬기도 힘들다. 겨우겨우 안마소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니 한족 여자들이 “아 카메라! 올 줄 알았지요. 잘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하면서 서랍에든 카메라를 건네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디지털카메라를 탐냈을 만도 한데, 어차피 날 밝으면 떠날 나그네인데,  모른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나그네의 물건을 돌려주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조심해가라며 손사래를 한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모래가 더 심하게 쏟아졌지만 두렵지 않았다. 모래가 얼마나 빨리 쌓이는지 나의 발자국이 열 발쯤 떼고 돌아보면 이미 자취가 없다.

민펑 사람

호텔에 돌아와 다시 샤워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서니 누구인지 모를 낯선 이가 보인다. 깍지 않은 수염과 눈썹은 모래에 염색되어 누렇게 변했고, 콧구멍에도 고운 모래가 메워져 기괴한 형상이다. 낮에는 모래를 먹고 밤에는 모래를 덮고 잔다더니 비로소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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