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읽을만한 책] 꽁꽁꽁
윤정주 글,그림/책읽는곰
이렇게 시원한 책을, 더위 다 가신 뒤에 추천하게 된 것이 아쉽다. 한여름 폭염에 펼쳐들면 낄낄대면서 더위를 조금이라도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술 취한 아빠가 아들 주려고 사온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들여놓은 뒤 문을 열어놓은 채 가 버린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아빠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책할 것이고, 엄마는 흥건해진 냉장고를 치우면서 소리를 바락 지를 것이고, 아들은 으아앙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하지만 그림책은 너무나 너그러운 장르다. 실수와 짜증과 실망까지도 감싸 안아 한바탕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다.
비결은, 표지에서 귀띔해주듯, 냉장고 속 작은 음식들이다. 요구르트며 쿠키며 딸기 들은 통통 튀는 아이처럼, 우유며 카스텔라들은 품 넓은 어른처럼 그려지는데, 이들이 힘을 합쳐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근사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찌나 흥겹고 유머러스하면서 생생하게 펼쳐지는지, 나도 이런 아이들을 냉장고에 넣어 놓은 뒤 지켜보고 싶어질 정도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망했다 싶은 상황이 놀랍게 반전되는 희망이 읽힌다. 작은 것들도 힘을 합하면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격려도 읽힌다. 그저 먹히는 것만이 운명인 음식물들이지만 주체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근사한 작품으로서 먹힐 수 있다는 자부심도 읽힌다. 그렇게 먹히면 뭐가 더 나은 걸까? 물론, 훨씬 낫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 아니더라도 이 그림책은 정말 즐겁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의 표정과 자세와 행동, 거기서 나오는 성격들이 어쩌면 이렇게 개성과 활기에 넘치는지. 의성어, 의태어를 적절히 활용한 탄력 있는 글도 그림과 잘 어울린다.
| 추천자: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