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 영토 대부분을 장악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바로 왕가의 저주라 불리던 ‘합스부르크 립’이다.
‘합스부르크 립(Habsburger Unterlippe)’은 일명 주걱턱이라 불리는 하악전돌증으로, 13세기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1세로부터 무려 6세기 이상 이어져 내려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립으로 인해 모두 길게 돌출된 아래턱을 가지고 태어나 극심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항상 부채를 들고 다니며 턱을 가렸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화가들에게 턱을 미화할 것을 요구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

세기의 미녀로 알려진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으로 돌출된 턱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초상화는 모두 돌출된 턱이 아닌 둥글고 짧은 턱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합스부르크 립은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실생활에도 많은 불편을 초래하게 했다.
합스부르크 립을 가진 왕가 사람들은 만성적인 위장장애를 앓았는데,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이 맞지 않아 음식을 씹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심한 합스부르크 립을 가졌던 카클로스 2세는 음식을 씹을 수도 없어 모든 음식을 갈아먹었으며, 카를로스 1세는 잠잘 때 입을 다물지 못해 벌레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펠리페 2세는 합스부르크 립으로 인한 부정확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왕가 최초로 업무를 서류로 보고 결재하는 방법을 도입해 ‘서류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펠리페 2세(좌)-카를로스 2세(우)

‘합스부르크 립’은 유전병의 일종으로 부모 모두에게 해당 유전자를 물려받아야만 나타나는 열성 유전자다. 그렇다면 이 열성 유전병이 합스부르크가에 끊이지 않고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후세의 학자들이 합스부르크가의 가계도를 분석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왕가의 저주를 부른 것은 바로 ‘근친혼’이었다.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이어갔는데, 그것이 열성인 합스부르크 립 유전자를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심화시킨 것이다. 결국, 오랜 시간 왕가를 괴롭힌 '합스부르크 립'은 저주가 아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스스로 부른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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