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행 경비행기에서의 바깥 풍경. 약 30분간의 비행 동안 히말라야를 쉼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변기통에 빠진 스마트폰, 그리고…

“악! 내 폰!!!”

눈앞이 캄캄하다. 박타푸르(Bhaktapur)에 가기 앞서 들렀던 비슈누 선생님 댁에서 내 스마트폰을 화장실 변기에 제대로 빠뜨리고야 말았다. 본능적으로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냈지만, 떨어진 충격에 튕겨나간 배터리는 이미 사라진 상태. 내 손에 남은 것은 오물 속에서 건진 스마트폰 본체뿐. 아, 스마트폰만 믿고 카메라를 안 가져왔는데…. 어떻게 온 네팔인데 사진조차 남기지 못 한다는 건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일은 네팔 여행의 꽃 ‘포카라’로 떠나는 날이 아니던가.
혹시 저렴한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살 수 있을까. 그날 박타푸르 여행을 후다닥 마치고 뉴로드(New load)에 있는 스마트폰 전문 상가로 향했다. 커다란 건물이 모두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파는 상점으로 채워진 네팔의 용산 전자상가쯤으로 보면 맞겠다. 이것저것 가격을 묻는다. 하지만 아무리 네팔이 물가가 싸기로서니 스마트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 순간 실수로 수백 달러를 써야 할 판이라니….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낀다.

“산띠, 내일 포카라 가지? 내 핸드폰 써”

화질이 좋은 삼성 스마트폰을 가진 사비따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포카라는 물론 한국 가기 전까지 아예 내가 가지고 쓰란다. 한국에서 스마트폰은 보물 1호가 아니던가. 결국 사비따는 나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주고, 사비따는 비파나의 폰을, 비파나는 폰이 없이 지내게 되었다. 아, 이 스마트폰마저 ‘풍덩’ 해버리면 어쩌나, 잃어버리면 어쩌나, 가방 속 사비따의 스마트폰을 꼬옥 쥐어본다.


‘설산을 조금 더 가까이…’ 안나푸르나의 관문 포카라로

작은 짐을 꾸려 잔잔한 호수를 따라 있는 포카라(Pokhara)로 떠난다. 1박2일 짧은 트레킹이지만 혼자 나선 만큼 가이드를 고용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부터 눈여겨 본 곳은 여성전문 트레킹 업체인 쓰리시스터즈(3 Sisters Adventure Trekking). 네팔인 세 자매가 운영하는 업체로 여성 가이드와 포터를 길러내고, 네팔 여성의 일자리를 위한 NGO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트레킹 업체. 솔직히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었지만 빈곤퇴치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하니 기꺼이 함께 하기로 했다.

“똑똑똑, 제가 당신의 가이드입니다”

본격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마을의 모습. 포카라 지역에선 구름만 아니면 어디에서나 히말라야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오전 9시 출발, 아직 다 못 싼 짐을 꾸리는데 가이드가 문을 두드린다. 1박2일을 함께할 가이드는 올해 41세인 미나. 서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덕담을 한마디씩 주고받고 기분 좋게 길을 나선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담푸스에서 1박을 하고 포타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를 거쳐 노우다나로 내려오는 코스. 하루에 걷는 시간이 5시간 남짓으로 길진 않지만 워낙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 터라 걱정이 앞선다.
앞만 보고 가지 않는 길, 이 길이 참 좋다

“딸랑딸랑” 종을 달고 산 속에서 짐을 나르는 당나귀들. 높은 지대에서도 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 건 바로 당나귀 덕분이다.

11월도 트레킹 성수기인지라 산을 오를수록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서양의 젊은이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지만. 얼마나 올랐나. 어느새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본다. 카트만두에선 저 멀리 있던 하얀 설산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보고 또 보면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을 옮긴다. 아, 그런데 자꾸만 끼어드는 구름. 얄미운 구름이지만 조금 여유로워지기로 한다. 구름이 끼면 저 아래 강과 마을을 보고, 걷히면 고개를 들어 설산을 보면 된다. 곳곳 작은 풀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앙증맞은 그 꽃을 손등에도 얹어보고 후 불어도 본다.
“초콜릿? 스윗?”

길을 걷다 학교를 마친 어린아이들을 만났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초콜릿을 외친다. 나는 이를 어찌하나 머뭇거리는데 가이드가 눈치를 채고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왜 안주냐”며 네팔어로 욕을 했단다. 나 원 참, 초콜릿 때문에 내 키 반도 안 되는 애들한테 욕을 들을 줄이야….

“초콜릿을 달라”는 요구에 “안돼”로 답하자 욕을 남기고 떠난 어린 아이들.


“한국 다녀온 내 친구가 화가 나서 말하길…”

일정을 함께하며 친해진 미나가 한국에 다녀온 친구 얘기를 꺼낸다. 한국에 일을 하러 간 친구가 몇 십년 전만 해도 한국-네팔이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한국은 지금 너무나도 발전한 반면 네팔은 아직도 그대로라고 화를 내더란다. 미나는 정치인들이 네팔 발전을 위해 일은 안하고 정당끼리 맨날 싸움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금은 세금대로 거두면서 아주 편하게 돈을 번다고. 어느 나라나 정치 문제는 마찬가지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시작된 정치 얘기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까지 흘렀다. 한국에서도 친구들 만나면 정치 얘기는 잘 안하는데 네팔에 와서 하게 되다니.
얼마나 걸었을까. 한낮에 흘린 땀이 말라갈 즈음 담푸스에 도착했다. 앗, 하루 종일 산길을 걸었더니 발가락에 커다란 물집이 두 개나 잡혀있다. 등산화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물집을 대강 처치하고 따듯한 물로 씻고 쉬어야지 하는데 웬걸 찬물만 콸콸 나온다. 아까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분명 따듯한 물 나온다고 했는데…. 하는 수 없다. 찬물로 재빨리 씻고 빨래까지 한 후 두꺼운 이불 속에 몸을 녹인다. 오늘은 산을 오르는 내내 구름이 잔뜩 껴 설산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내일 일출 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스친다.
담푸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담푸스에서 맞이한 일출 장관. 태양빛에 설산이 하나하나 붉게 물든다.

‘히말라야 일출을 보리라’ 아직 달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뜨길 기다렸다. 휴, 다행이다. 그 많던 구름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늘 하늘은 맑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말로는 6시 15분에 해가 뜬다고 했는데, 언제쯤 귀한 얼굴을 보일까. 새벽 추위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하는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해다. 저 멀리서 그토록 기다린 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꿈일까 현실일까. 붉은 해가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듯 하얀 설산을 하나하나 물들이고 있었다. 담푸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무슨 복을 타고났기에 날마다 이 장관을 맞이한단 말인가. 나도 언젠가? 하는 꿈을 잠시 꾸어본다.

호사가 따로 없는 이 길, 언제쯤 다시 걷게 될까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 맑은 그 모습에 마음도 가볍다.

서두르지 않아도, 앞지르지 않아도 되는 길. 하루 만에 퍽 친해진 가이드 미나와 그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떼면 된다. 가고 싶으면 가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면 되는, 그런 길을 걸었던 때가 언제였나. 그리고 언제쯤 다시 이 길을 걷게 될까. 새벽부터 장관을 봤더니 마음도 맑아졌는지 히말라야가 더욱 빛나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간직한 히말라야. 저 위에 눈이 처음 쌓인 게 언제쯤이었을지 감히 가늠할 수나 있을까. 올해 쌓인 눈도 언젠가 산에 오른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할 터. 눈을 이리 돌리면 안나푸르나, 저리 돌리면 마차푸츠레. 내 생에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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