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해군공관’ 사진 첫 공개…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져
-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김중업과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활동했지만, 두 건축가의 사유는 공명했다.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에서 시작된 인연은 파리 아틀리에의 공동 작업으로 이어졌고, 이후 김중업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 ‘운명적 교차’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열린다. 김중업이 말년에 직접 설계한 주택 ‘연희정음’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건축 사진전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의 무대로 삼았다. 전시는 6일 개막해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
전시는 사진을 통해 두 건축가의 공간 철학을 다시 읽는다. 특히 김중업의 대표작 주한 프랑스대사관(1962)이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 아래 어떻게 한국적 조형 감각으로 재해석됐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이 건축물은 프랑스의 합리주의와 한국적 공간미가 만나는 지점으로, 두 건축가의 사상적 교류가 가장 응축된 결과물로 평가된다.
‘진해 해군공관’(1968)의 사진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군사시설이라는 특수성으로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은 건축 사진가 김용관의 촬영을 통해 김중업의 후기 공간 실험을 보여준다. 자연 채광, 유기적 동선, 전통 지붕 형상의 재해석 등은 그의 후기 건축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르 코르뷔지에의 인도 찬디가르 프로젝트 역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이다. 프랑스 사진가 마누엘 부고는 법원과 의회 등 주요 건물을 장기간 기록해 왔으며, 김중업 역시 해당 프로젝트에 실무자로 참여해 두 건축가의 접점을 남겼다.
전시장 자체인 연희정음은 전시의 주요 전시물이기도 하다. 김중업이 생애 마지막 시기 설계한 이 주택은 마당과 중정, 복도, 폐쇄적 외관과 개방적 내부 구조가 공존하는 실험적 형태로 구성됐다. 리모델링 이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방되며, 건축이 단지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체험되는’ 환경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박종선 디자이너가 설계한 전시장 가구는 공간과 사진 사이를 매개한다. 영화 〈기생충〉의 가구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에서 ‘앉는 행위’를 통해 공간의 체험을 제안한다. 조형성과 실용성을 결합한 가구는 관람객의 시선과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전시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번 전시는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공식 전시로, 과거와 현재·동양과 서양·기록과 창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건축이 두 세계를 잇는 상징적 역할을 보여주는 문화예술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
전시는 2026년 2월 28일까지 연희정음에서 계속된다. 기간 중 작가 토크 및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며, 11월 8일 오후 3시에는 김용관·마누엘 부고의 아티스트 토크가, 11월 22일 오후 3시에는 김종석·윤태훈 건축가의 보존·재생 토론이 진행된다. 12월 13일에는 고려대 건축학과 김현섭 교수의 학술 강연도 예정돼 있다.
단, 판매 티켓은 연희정음 전시에만 적용되며, 11월 5일부터 열리는 주한 프랑스대사관 전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