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매와 일출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4.10 06:00
한 마리 매가 홀로 아침을 맞이하다
  •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사람마다 지지하는 당과 인물이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가 더 잘 사는 세상, 서로 돕고 함께 걸어가는 세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당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 (왼쪽) 가응도(架鷹圖), 작자미상, 울산박물관 (오른쪽) 해뜨는 바위 위의 매(旭日豪鷲圖), 정홍래(1720~?), 국립중앙박물관
    ▲ (왼쪽) 가응도(架鷹圖), 작자미상, 울산박물관 (오른쪽) 해뜨는 바위 위의 매(旭日豪鷲圖), 정홍래(1720~?),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모두 매를 주인공으로 그린 <가응도(架鷹圖)>와 <욱일호취도(旭日豪鷲圖)>다. 조선시대에는 매를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이 적지 않다. 그중 조선 중기까지 매를 그린 그림들은 대개 횃대 위에 앉아 있는 사냥용 매를 그린 것이었다. 이런 그림을 <가응도>라고 한다. 횃대 위에 앉아 있는 자세에서 제법 맹금류의 위엄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줄에 묶인 매는 어딘지 모르게 야성(野性)을 잃은, 길들여진 모습이다. 조선의 임금은 신하들에게 <가응도>를 선물했다고 한다. 주인을 위해 사냥을 하는 매와 같이 충성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반대로 신하가 임금에게 <가응도>를 선물하면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가응도>에서 매를 묶어 놓은 줄이 화려할수록 매가 고귀해 보이지만, 실은 매 주인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아무리 화려한 금줄에 매여 있어도 창공을 나는 자유로운 매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가 되면 매를 묶은 줄도 사라지고, 매의 주민등록증인 시치미도 사라진, 자연 속의 늠름한 야생의 매를 그린 작품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바닷가 바위에 홀로 앉아 있는 용맹한 매를 그린 그림이다. 자연계에서 매가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바위에 홀로 서서 해를 맞이하는 광경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욱일호취도>를 그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용맹스러운 수컷 매를 웅응(雄鷹, xióngyīng)이라고 한다. 웅응의 중국어 발음을 거꾸로 읽으면 영웅(英雄, yīngxióng)이 된다. 즉, 수컷 매는 영웅을 상징한다. 한 마리가 홀로 서 있으니 독립(獨立)이다. 그래서 한 마리 매를 그린 그림을 영웅독립(英雄獨立)이라고 읽는다. 

    영웅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거나 그 가치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다. 조선 시대의 선비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매는 새끼를 돌보는 동물을 먹잇감으로 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매는 문무를 겸비한 이상적인 영웅을 상징한다고 여겨왔다. <욱일호취도>는 바로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는 그림인 것이다.

    한 마리 매가 일출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외로워 보이지만, 고독한 영웅의 모습으로 보인다. 문득 “새로운 영웅이 나타날 때마다 지나간 악당이 그리워지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나간 악당도 처음에는 영웅이었을 게다. 알면서도 사람들은 늘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