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까치와 매화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3.27 06:00
매화 향기 봄바람에 기쁨을 싣고 오다
  • 바야흐로 매화 향기 가득한 계절이다. 매화는 고난을 극복하는 민족정신과 선비 정신을 상징한다. 이육사가 조국의 광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시 <광야>의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구절에도 매화의 상징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럼, 전통 그림에서 매화는 어떤 의미일까? 

  • (왼쪽) <고매서작(古梅瑞鵲)>, 조속(1595 ~ 1668),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월매도(月梅圖)>, 어몽룡(1566 ~ 1617),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왼쪽) <고매서작(古梅瑞鵲)>, 조속(1595 ~ 1668),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월매도(月梅圖)>, 어몽룡(1566 ~ 1617),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위 두 그림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조속과 어몽룡의 작품이다. 하나는 까치가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고, 다른 하나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밤 매화꽃이 운치 있게 피어 있다.

    ‘매화나무에 앉은 까치’와 ‘달밤에 핀 매화’는 조속과 어몽룡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많은 화가의 단골 그림 소재였다. 옛사람들은 왜 같은 소재와 비슷한 구도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것은 그림이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먼저 <고매서작>을 읽어보자. 까치는 한자로 희작(喜鵲)이니 기쁨(喜)으로 읽는다. 그리고 매화나무 가지는 한자로 매초(梅梢, méishāo)라고 하는데, 이는 눈썹꼬리를 가리키는 미초(眉梢, méishāo)와 중국어 발음이 같고 우리말 발음도 비슷하다. 매화나무 가지 위에 까치가 올라앉는 동작은 한자로 상(上)이다. 그래서 ‘매화나무 가지 위에 앉은 까치’는 “눈썹꼬리 위에 기쁨이 앉는다”-희상미초(喜上眉梢)-라는 뜻으로 읽는다. 

    다음은 <월매도>를 읽어보자. 달밤의 매화, 벌써 코끝에 매화 향기가 느껴진다. 매화나무 매(梅, méi)는 처마 미(楣, méi)와 중국어 발음이 같고 우리말 발음도 비슷하다. 매화나무 가지 위에 둥근달, 즉 만월(滿月)의 월(月, yuè)은 즐거울 락(樂)을 의미한다. 한자 ‘樂’은 우리말 발음으로 ‘즐거울 락, 좋아할 요, 소리 악’ 세 가지가 있다. 중국어에도 그 뜻에 따라 ‘lè, yào, yuè’ 세 가지 발음이 있다. <월매도>의 ‘달(月, yuè)’은 ‘즐거움(樂)’으로, 보름달 ‘만월(滿月)’은 ‘가득한 즐거움’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둥근 달 아래 곱게 핀 매화’는 ‘처마 위에 가득한 즐거움’-미상만락(楣上滿樂)-으로 읽는다. 특히 어몽룡의 다른 <월매도>는 5만 원 권 지폐 뒷면에서도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달이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의 상단 왼쪽에 희미한 동그라미, 오랜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진 달을 찾을 수 있다.

    <고매서작>과 <월매도>는 그림을 마주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이 함께하길 기원하는 그림이다. 속뜻을 알고 보면 그림이 더 멋지게 다가온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