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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의료 현황 점검] 질병 ‘예측’의 시대가 왔다

기사입력 2022.10.12 14:50
NIPA 등 지원, 의료 디지털 전환 사업 각양각색… “주요 질환 정복 성큼”
  • 의료 분야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의료 목적이 치료에서 예방·예측으로 변화하고 있다. /픽사베이
    ▲ 의료 분야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의료 목적이 치료에서 예방·예측으로 변화하고 있다. /픽사베이

    의료계에 디지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코로나19처럼 갈수록 다양해지는 바이러스와 고위험 질환에 대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치료목적이 아는 예방 목적의 진료를, 의사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병원으로의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물론 질병의 역풍도 만만치 않다. 기존에 없던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암과 같은 고위험군 질병 발생률도 계속 늘고 있다. 질병과의 다툼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한 의료계의 선택은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다. 치료에 앞서 예방 목적의 진료를, 의사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병원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의료분야 디지털 전환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획득한 의료 AI 활용 지원’, ‘클라우드 기반의 병원정보시스템 구축 지원’, ‘군 의료 환경 맞춤형 의료영상 판독지원 AI 개발’ 등의 신규 과제를 선정, 지원을 약속했다. 현재 국내 디지털 의료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NIPA 진행 주요 사업을 조명해봤다.

    ◇예고된 감염병, 마스크 없는 생활을 준비하다

    NIPA가 투자하는 디지털 기술 중 하나는 전염병 예방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신규 감염병 발생 주기가 계속 줄고 있어서다. 실제로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부터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까지 인수 질환 발생 주기는 계속 짧아졌다. 코로나19처럼 경제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팬데믹이 언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AI로 상황별로 비말 거리를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AI로 상황별로 비말 거리를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김동원 기자

    NIPA는 전염병 위협에 과학적 예방으로 맞서고 있다.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기 전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로 줄이고 경제적인 타격을 줄이기 위한 예방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 연구 분야 중 하나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비말 거리를 환경별로 분석해 예방수칙을 정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장소와 계절, 사람 체형별로 다르게 전파되는 비말 거리 데이터를 AI로 분석, 사람 간 거리두기 등의 방안을 과학적 근거로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제는 국내 AI 기업 래블업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려대안암병원이 공동으로 수행 중이다. 황은진 래블업 책임연구원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이 됐던 2m는 1940년 비말 생성 관련 연구에 기반한 것”이라면서 “실제로 비말은 7~8m 이상 퍼지기도 하고 사람 체격이나 호흡기 증상 여부에 따라 퍼지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AI로 조사해 방역 수칙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최신 과학적 근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NIPA는 실내에서 바이러스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 즉 팬데믹 중에도 마스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술 개발 역시 지원하고 있다. 박재현 성균관대 의대 교수팀이 개발한 ‘수직층류형 공조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무균수술실에서 감염 방지를 위해 사용되는 ‘수직층류’를 실내 사람이 있는 지점에 적용해 바이러스를 방지하는 기술이다. 실내 천장에 설치하면 해당 지점에선 공기 흐름이 수직으로만 이뤄지게 해 다른 곳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바이러스균을 차단한다. 5월 28~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박재현 교수는 “냉난방기, 공기청정기, 환기장치는 실내 공기를 대류시키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더 전파시킬 위험이 있다”며 “수직층류 공조시스템의 경우 바이러스의 수평 이동을 방지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될 정도로 감염병을 방지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최대의 적 ‘암’, 예방 넘어 예측한다

    NIPA가 주력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업은 AI 기반 영상판독이다. 의료진을 보조해 CT와 MRI, X선 촬영 영상 등 의료영상을 AI가 판독하는 기술이다. 의료진은 AI가 판독한 결과를 참고해 빠르고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오랜 기간 인간의 건강을 위협해 온 암 예방과 진단에도 활용할 수 있다. 노이즈가 심한 저선량 CT 영상을 높은 정확도로 판독해 암세포를 조기 발견하거나 그동안의 암 환자 영상을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암 질환 예측도 할 수 있다. 국내 대학 병원과 AI 기업은 현재 NIPA의 지원을 토대로 폐암, 위암, 간암, 피부암 등의 질환을 예방하는 AI 기술을 개발 중이다.

  • 노이즈가 심한 저선량 CT 영상을 정확하게 판독하는 AI 기술이 개발됐다. /김동원 기자
    ▲ 노이즈가 심한 저선량 CT 영상을 정확하게 판독하는 AI 기술이 개발됐다. /김동원 기자

    국내 암 사망률 1위 질병인 폐암을 진단하는 AI 기술은 ‘딥노이드’와 부산대병원이 함께 개발하고 있다. 폐암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초기 발견이 어렵다고 평가되는 암이다. 검진을 할 때 노이즈가 심한 저선량 CT로 촬영해 판독이 어려운 영향이다. 실제로 환자 절반가량은 4기 전이성 폐암으로 진단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 딥노이드와 부산대병원은 사람이 봤을 때 보기 어려운 노이즈가 심한 영상에서 의심 폐 결절 위치와 개수, 결절 길이와 부피 정보, 폐암 가능성 여부를 높은 정확도로 판독, 의사에게 알려주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딥노이드 관계자는 “폐암이나 폐 결절 등의 질환 의심도를 분석하는 이전 버전을 업그레이드 해 폐암을 검출하는 기술을 완성했다”며 “기존 의료진이 폐암 판독에 10분 이상이 걸렸다면 우리의 기술을 함께 사용할 경우 이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암과 위암도 AI 기술로 예방,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간암은 서울대병원과 메디컬아이피가, 위암은 가천의과대학 길병원과 인피니트헬스케어가 진행하고 있다. 

    간암은 만성 B형간염 환자의 간암 발생 여부를 예측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개발 중이다. 메디컬아이피 관계자는 “B형간염 환자가 간암 감시를 주기적으로 잘하면 40~50% 확률로 간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암은 AI 기반 위내시경 진단보조 소프트웨어로 위내시경 검사 시 실시간으로 위암과 위 병변을 자동으로 탐지·예측·진단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인피니트헬스케어 관계자는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 현장에서 “이 기술은 위내시경 검사에서 간과율을 낮추고 진단율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의사를 보조하는 AI 기술을 통해 비숙련 임상의 병변 검출 성과를 약 20% 개선하고 위암 조기 발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지키는 장병, 그들을 지키는 AI

     AI로 의료영상을 판독하는 기술은 군에도 공급되고 있다. 골절, 척추질환이 있는 환자의 X선 촬영 영상과 CT 영상판독에 AI 기술을 도입, 이상 검출 정확도와 측정 속도를 높이는 노력을 시도 중이다.

    군 의료에 AI 기술 도입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군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군의관이 아직 의료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이 다수고 전문 분야와 다른 진료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실제로 각 부대에 배치된 군의관은 전공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진료를 하고 있다. NIPA 역시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 국내 AI 기업과 군 의료 발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 현장에서 본 국내 기업들의 노력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의료기업 ‘뷰노’는 X선 촬영 영상을 판독, 사지골절 여부를 검출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AI 기반 상지 엑스레이 판독 보조 솔루션과 이동형 엑스레이 판독 보조 솔루션을 개발 군 부대에 시범 적용하고 있다. 두 제품은 모두 NIPA 주관 'AI 융합 의료영상 진료·판독시스템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루닛’은 장병들의 흉부 질환을 AI로 빠르게 판독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폐렴, 결핵, 기흉, 폐암, 흉막삼출 등 5개 질환을 포함한 흉부 질환을 AI가 빠르게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CT나 X선 촬영을 한 영상을 AI가 분석해 흉부 질환 의심도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5개 질환에 대해서는 국방부로부터 약 20만 건의 의료영상 데이터를 제공받아 기술을 고도화했다.

  • AI 기반으로 장병의 척추질환을 자동 진단·분석하는 기술이 군에 공급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AI 기반으로 장병의 척추질환을 자동 진단·분석하는 기술이 군에 공급되고 있다. /김동원 기자

    딥노이드는 장병의 척추질환을 자동 진단·분석하는 기술을 군에 시범 적용하고 있다. 척추를 촬영한 사진을 AI가 자동 분석해 어느 부위에 이상이 있는지, 척추는 얼마나 휘었는지의 정보를 제공한다. 딥노이드 관계자는 “군은 사회와 마찬가지로 영상판독 전문의가 부족하다”면서 “이를 위해 AI 기반 영상판독 솔루션으로 의사의 판독을 보조해 영상판독 전문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장병들에게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명숙 NIPA 디지털헬스산업팀장은 “현재 군에서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골절과 흉부 질환에 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을 2021년부터 시범 적용하고 있다”며 “군 특성상 골절과 흉부 질환을 전문으로 하지 않거나 경험이 적은 군의관이 관련 분야도 진료하고 있어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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