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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할지 2년 전에 아셨어요?"
배우 윤계상의 솔직한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빵 터졌다. 예전 윤계상이 인터뷰에 임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실 그는 늘 조심스러웠다. god가 다시 뭉치기 전에는 god의 이름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고,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붙을 때는 배우라고 자신을 칭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던 시간을 지나온 그가 편안해졌다. "요즘 친구들은 지오디(god) 윤계상이라고 하면 모른대요. '범죄도시' 장첸이라고 해야 저를 안대요"라며 "좋은거죠, 뭐"라고 그의 환한 웃음과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
윤계상은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키스 식스 센스'에서 차민후 역을 맡았다. 차민후는 광고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팀장이다. 모든 광고주가 그와 일하기를 원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팀장의 눈에 항상 모자라기만 후배 직원들에게 그는 분노유발자다. 그는 광고주의 전조를 누구보다 잘 캐치하고 광고에 반영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몸에 있다. 과거 한 사건으로 인해서 오감이 발달한 것. 멀리 있는 것도 잘 볼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의 말도 잘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키스를 하게 되면 오감이 극도로 발달해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우연히 후배 예술(서지혜)과 입을 맞추게 됐다. 이는 그의 삶에 다른 국면을 가져온다.
오랜만에 윤계상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돌아왔다. 그는 "재미있었지만,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늙수그레해져서요"라며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진짜 (서)지혜 씨는 너무 예쁘잖아요. 그런데 저는 '크라임 퍼즐' 끝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거든요. 제가 장르에 맞게 몸을 혹사시키는 스타일이라서요. 얼굴도 막 혹사시켰거든요. 당시에 다크 서클도 진짜 심했어요. 죄송스럽더라고요. '키스 식스 센스' 촬영 내내 그것만 신경 썼어요. 외모를 가꾸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최고의 스태프진을 꾸렸어요. 너무 유명해서 현장에 잘 안 나오시는 분들이 오셔서 꾸며주셨는데도 죄송합니다. 노력은 많이 했는데 돋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
윤계상은 겸손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지만, 사실 차민후는 수많은 여심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광고회사라는 컨셉에 맞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스타일리시한 모습이었다. 또한, "너 나 무시하지? 그러니까 이런 걸 만들어오지"라는 뼈 때리는 말들도 서슴지 않았던 초반의 차민후에서 한 스푼씩 로맨스가 더해지며 변화하는 모습은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윤계상의 외모적으로 보면, 그는 예전보다 더욱 넓어진 어깨로 남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젠 덩치가 있게 됐어요. (웃음) 예전에는 제가 좀 마른 편이었잖아요. 지오디 때는 62kg였고요. JTBC 드라마 '초콜릿'(2019) 할 때는 74kg, 지금은 78kg이에요. '크라임 퍼즐' 때 몸을 좀 만들기도 했어요. 그때 액션씬이 있었는데, 목욕탕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장면이었거든요. 전반적으로 몸을 불려 놨었는데, '키스 식스 센스'까지 작품이 이어지면서 몸이 더 커 보였던 것 같아요." -
윤계상은 늘 성실한 준비로 작품에 임하기로 유명하다. 영화 '유체이탈자' 때는 지오디 콘서트를 끝낸 후에도 연습실에 출석해 배우들과 모여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장면을 만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오감이 발달한, 까칠함에서 로맨틱으로 변해가는 차민후에 대해 어떻게 고민했는지 궁금했다. 윤계상은 차민후에 대해 "판타지나 상상씬을 소화할 때는 지오디(god) 때 윤계상 모습을 많이 썼고, 멋짐 뿜뿜 모습에서는 '굿 와이프'(2016) 속 모습도 썼고요. 이런 걸 뒤섞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는데, 직접적인 표현이 효과적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헤드폰을 끼고 진한 안경을 쓰면 소리나 빛을 힘들어하는 것이라는 설정이 자연스레 되잖아요. 대본에 다 쓰여 있어요. 개인적으로 준비한 건 많지 않더라고요. (실제로 귀를 움직이며) 제가 귀를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쓰지 않으시더라고요. 메이킹에서도 안 쓰셨던 것 같아요. (웃음)"
아이디어를 더하기도 했다. '나의 성적 취향을 맞춰줄 수 있어?'라는 대본상의 한 줄에 윤계상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는 "이상한 태도로 '뭔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뿜어내야 하는데요. 제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였어요.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요. 일산에 진짜 성적 취향이 독특한 분들을 위한 카페가 있더라고요. 실제로 가보고 충격받았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
예술(서지혜)과 사랑에 빠진 차민후는 극 초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처음 예술이 차민후에게 '팀장님 혹시 저 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 일단 '어'라고 답한 뒤 집 보완과 관련된 것들을 다급하게 설명하고 허겁지겁 뒤돌아나가는 모습은 인터넷 상에서 짤로 만들어질만큼 귀여움을 더했다. '직진남'의 모습은 차민후였고, 윤계상이었다.
"귀여운 것 같아요. 사랑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를 재는 게 아니라 솔직한 남자 같아서요. 여자라면 좋아할 것 같아요. 요즘 세상과도 맞닿은 것 같아요. 꾸며내지 않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사랑해줘, 사랑받고 싶어'라는 말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확신하는 건 '솔직함만큼 매력적인 건 없다'는 생각이에요. 차민후스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솔직한 사람이라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얘기해요. 까칠한 것 빼고는 다 똑같습니다. 장난도 많이 치고요. 절대 뒤에서 바라보지 않아요. 그냥 바로 좋아한다고 얘기해요. (웃음)" -
사실 솔직함은 윤계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차민후가 더욱 가득 차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때그때 연기관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중인데요. 예전에는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가진 어떤 부분이 사랑받았고, 덕분에 여기에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윤계상이 대중에게 처음 사랑받은 이유부터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분명히 여기 계신 분들도 저를 아신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풍파를 겪었고, 일을 겪었는지요. 저는 솔직했던 것 같아요. 비단 좋을 때뿐만 아니라 힘들 때까지도요. 에너지를 다 발산하는 것 같아요. 그게 사람들에게 징그럽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순간, 반감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징그럽잖아요. (웃음)" -
지오디(god)가 인기 최정상에 있을 때, 윤계상은 배우의 길을 택했다. 가수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적당히 타협하는 지점도 있었을 텐데, 윤계상은 지오디 탈퇴라는 선택을 했다. 당시에 대해 윤계상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은 '운명이 아니었을까'라고 이야기해요"라고 대답을 이어간다.
"제가 가는 길이 이런 길인데, 돌아서 그 길을 가게 됐다면 그것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몸소 느끼고 있어요. 45년 동안 살아오면서 제가 원했던 것들이 찌그러지기도, 넘어지기도 했고요.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 잘 된 적도 있었고요. 그걸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때의 제가 '왜 그렇게 내몰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도, 지오디가 싫어서도 아니었거든요. 그렇기에 지금 지오디를 다시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결혼할지 2년 전에 아셨어요? 진짜 이렇게 빨리 결혼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이렇게 되더라고요. 정말 신기해요. 사람이 각자 가는 길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
그런 윤계상은 연기에 있어서 만큼은 "끊임없이 잘하고 싶다"라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동안 작품을 위해 체중 감량과 증량, 삭발 투혼, 매일같이 연습실 출근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왔다. 자신을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계속 몰아세웠다.
"제가 잘했다고 느끼는 수준에 도달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키스 식스 센스'로 인터뷰 중이지만,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제가 못 한 것 같아요. 장첸 때도 그랬어요. 숙제 같은 이야기이지만, 언젠가는 잘하고 싶어요."
"제가 좀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잘하고 싶어요. 전체적으로 보면 장첸은 잘 해냈다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범죄도시'를 통해 발견된 사람이 꽤 많았거든요. 신드롬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런 작품에서 제 분량이 도드라진 것뿐이라는 생각을 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가 생기잖아요. 경험치가 높아지는 만큼 무뎌지는 것도 생겨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 같아요, 삶도 연기도." -
자신을 가혹하리만큼 몰아붙이는 윤계상의 인터뷰의 마무리는 즐거운 상상이었다. 앞서 '범죄도시'를 기획·제작한 마동석은 10편 까지 구상해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속에 장첸('범죄도시' 윤계상)과 강해상('범죄도시2' 손석구)의 싸움을 볼 수는 없는 걸까. 윤계상은 웃으며 답한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혹했네요. 진짜. (웃음)"
그렇게 한층 솔직해진 윤계상과의 1시간이 훌쩍 흘렀다. '키스 식스 센스'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에서 볼 수 있는 윤계상의 매력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서, 또 그다음 작품에서 계속해서 윤계상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질 예정이다. 투명하게 솔직한 만큼 작품에 임하는 윤계상의 노력은 보장되어있으니 말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