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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기자.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대하지만, 마음의 거리가 마냥 가깝진 않다. 스타로서 십 년 넘는 시간을 보내온 박소진에게도 기자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연예부 기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드라마 '별똥별' 속 연예부 기자 '조기쁨' 역을 통해서다. 박소진은 현실적인 직장인의 모습으로 연기 호평을 받았다. 매일 상사에게 깨지기 일쑤에, 머리를 가꿀 시간도 없는 듯 집게로 집어 올린 헤어스타일까지. 묵묵히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의 면면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작품 종영 후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카페에서 박소진과 마주 앉았다. 꾸밈없는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박소진은 기쁨이처럼 똑 부러지기도, 때로는 기쁨이보다 더 발랄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으레 묻는 종영 소감에 박소진은 "시청자분들이 기쁨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기쁨이에게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분들께서 기쁨이가 시니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쟤도 참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기자들이 저런 경우들을 겪으면서 '기사를 쓰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국장을 같이 미워해주시는 점이 정말 감사했죠." -
기쁨이는 만사에 시니컬한 기자다. 일에 대해 열정이 넘치지만, 그 에너지가 밖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피로 누적에 휩싸인 듯 일할 때면 영혼이 빠져있는 듯 보이지만, 일은 똑 부러지게 해낸다. 그런 기자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궁금했다.
"일단 시니컬하다는 건 작가님께서 가져가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도 시니컬한 친구들을 봤을 때 대부분 마음은 여린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방어적으로 그렇게 사는 면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과 기자분들이 어떤 심리적인지, 어떤 사고적 메커니즘이 있는지 실제 기자님께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했어요. 어떤 스타나 사건을 다룰 때 애정이 있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직업적인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했던 것 같아요." -
박소진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실제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기쁨'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자신도 기사에 상처를 받은 때도 있었지만, 그 글을 쓰는 기자의 마음은 처음 헤아려봤다며 웃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스타의 뒤에서 그들을 전폭적으로 서포트하는 소속사 홍보팀, 스태프들의 존재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저도 인터넷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저를 많이 잃어버릴 때도, 우울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기사로 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거든요. 그냥 이런 일이 이슈가 될만해서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윤우 사건 신을 찍으면서 기자들도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를 떠나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신이었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예상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홍보팀 일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주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고마운 마음이 큰 게 사실이에요. 무슨 드라마 출연한다는 기사 하나도 회사에서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공을 들여서 보도자료를 내주신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감사하고 고생이 많으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드라마를 하고 나서 홍보팀 분들께 애정을 많이 보내드리고 있어요. 잘 본 기사들은 전달해서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웃음)" -
박소진은 기쁨이를 연기하며 '예뻐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놨다. 본래 그렇게 꾸미는 스타일은 아니라던 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렇게 '출근 준비 10분 컷'을 외칠 것만 같은 조기쁨을 완성했다.
"약간 십분 컷 느낌으로 생각했어요. (웃음) 꾸미는 걸 좋아하는 기자분들도 많이 봤고 안 그런 분들도 계시고 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던 부분이에요. 직업적으로도 발로 뛰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높은 신발은 안 신게 되고 머리도 오분 컷으로, 숍에 가서도 오분 컷으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 내추럴함에 포인트를 주려고 했죠."
"처음에 감독님한테 '잔머리 있는 거 신경 쓰시는 편이세요?'하고 여쭤봤어요. 저는 예쁜 걸 안 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감독님과 작가님이 열려 있으셔서 괜찮았어요. 저도 생각보다 그런 외적인 걸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사람이 어떻게 늘 깨끗하고 말끔할 수가 있겠어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상황에 맞게 하는 게 가장 좋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
기쁨이는 여러모로 박소진과 닮아 보였다. 하지만 박소진은 "기쁨이 덕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걸 표현할 수 있었다"며 자신과 달라 더 좋았다고 말했다. 걸그룹 시절엔 리더로서의 짐, 배우로서는 홀로서기의 부담감을 짊어졌던 그이기에 때로는 곪은 감정을 터트리는 기쁨이가 부러웠나 보다.
"저는 기쁨이처럼 아주 직설적이지는 못 한 사람이에요. 문제 상황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말하거나 아니면 '나만 불편한 거면 그냥 넘어가자'하는 편이거든요. 마음속으로는 다 기쁨이처럼 생각하지만요. 그런 걸 망설이지 않고 뱉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기쁨이의 매력 같아요. 제 마음 한구석, 작은 면을 표현할 수 있어서 시원하기도 했죠." -
이젠 걸스데이 소진보다 배우 박소진으로 살고 있는 시간이 많은 그다. 최근엔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대중의 눈도장을 톡톡히 찍고 있다. 인생 2막을 맞이하게 된 박소진을 이렇게 쉼 없이 달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궁금했다.
"첫 번째 원동력은 생계죠. 제가 얼마 전에 여러 작품이 겹쳐서 1년 반에서 2년을 내리 달렸거든요. 그러다 최근에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 연기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엄청난 열정이고 새로운 인생이라는 느낌도 있어요. 이 안에서 저라는 사람이 변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서'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저는 사람들이 굳이 저를 인지하지 못해도 좋은 것 같아요. 그냥 그 이야기에 나오는 누군가로만 보인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고요. 그리고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아서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요. 요즘 끌리는 캐릭터는 나쁜 사람이에요. 범죄자나 양아치,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상상할 것들이 많을 것 같거든요. 현실적인 역할을 잘 해내는 것도 재밌었는데, 진짜 상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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