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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 국어사전에 담긴 ‘허상’이란 단어의 뜻이다. 평상시 대화 중 허상이란 단어를 끄집어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메타버스 관련 신문 기사에는 이 단어가 들어간 댓글이 적잖게 보인다.
메타버스는 허상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실제가 물리적 공간에 실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메타버스에서 우리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든 대상은 디지털 코드의 시각적 투영이므로, 그 자체가 물리적 실존은 아니다. 몇 가지 질문과 마주해보자.
첫째, 허상이라면 가치가 없는가? 허상을 사고파는 행위는 미친 짓인가? 인류는 기원전부터 이야기를 지어내고 퍼트리며 즐겼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허상이다. 물리적 공간에 실존했던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이 그런 허상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연유는 그런 이야기가 현실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허상의 드라마와 영화는 물리적 공간에 실존하는 다양한 제품의 마케팅에 참으로 촘촘히도 활용되고 있다. 허상이기에 가치가 없다고 보기는 무리이다.
둘째, 인간은 왜 허상을 사랑하는가? 인간이 무언가에 애정을 갖는 원인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리적 공간에 실존하는 돈, 권력과 같이 경제적 효용성이 명확한 것이라면, 설명하기가 단순해지지만 말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이야기,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경제적 잣대가 없다. 세계관이 담긴 NFT를 수집하는 이들 중에는 투자 목적이 아니라, 그저 NFT 아이템을 수집하면서 즐거워하는 이들도 적잖다. 여기까지 읽고 보면 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언가에 관한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이 경제적 효용성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허상까지 기꺼이 사랑한다.
셋째,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허상은 무엇인가? 디스플레이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지는 메타버스의 겉모습은 허상이다. 그러나 그 허상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실존하는 것을 그대로 원격으로 또는 확장해서 투영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실존하지 않던 것을 새롭게 창조해서 투영하는 경우이다. 이런 허상을 만드는 이, 소비하는 이, 양측의 바람은 경험 확장으로 귀결된다. 물리적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서 디지털 현실에서 경험을 확장한다. 그런 확장을 통해 만든 이는 경제적 효용을 높이고, 소비하는 이는 더 큰 행복을 누린다. 요컨대,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허상은 경제적 효용과 행복이다.
메타버스의 허상이 얼마나 성장할지, 어디에까지 닿을지, 그 답은 인류의 욕망과 상상력에 달려있을 뿐이다.
[김상균 교수] 김상균 교수는 메타버스 분야 학문적 권위자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지과학자다. 다수의 대학, 기업, 공공기관에서 로보틱스, 산업공학, 인지과학, 교육공학 등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메타버스 아바타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의 사외이사로 메타버스 전문 미디어 '메타플래닛',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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