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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내포한 사이가 있을까. 그사이에는 많은 기대와 많은 실망, 그리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지연 감독은 이를 '앵커'라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직업군 속에 녹였다. 영화 '앵커'를 통해서다.
11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앵커'의 언론시사회가 진행돼 배우 천우희, 신하균, 정지연 감독이 참석했다. '앵커'는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가 자신의 죽음을 제보하는 전화를 받고 이를 취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혜영은 세라의 엄마 역, 신하균은 정신과 의사 인호 역을 각각 맡았다.
천우희는 앵커 역을 맡아 매일 4시간 이상 연습했다. 또한 김민정 아나운서가 녹음해준 원고를 반복해서 들으며 또렷한 발성과 딕션으로 뉴스를 전하는 완벽한 '앵커'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는 앵커 변신에 대해 "압박감이 심했다. 9년 차, 전문앵커인 세라의 모습이 납득이 되어야지 관객이 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선의 노력을 하면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라며 "현장에 같이 나와준 김민정 아나운서께서는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격려해주셨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라고 밝혔다. -
앵커 역할을 맡아서 발성과 딕션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우선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천우희는 "심리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내적인 불안감이나 이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 애정욕구에 대해 조금 더 주안점을 두었다. 장르적으로도 잘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명확한 선이 필요했다.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나누고 맥을 정확히 짚으면서 연기하려고 했다"라고 세라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세라는 엄마(이혜영)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진 인물이다. 엄마는 세라가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세라가 그 자리에서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실제 어머니의 생각을 묻자 천우희는 "제가 현장이나 작품 이야기는 가족과 잘 하지는 않는다. 부모님 입장에서 어떤 작품을 하거나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걱정을 많이 하신다. 그런데 가족이란 게 냉정하지 않나. 작품을 보고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기도 하다"라며 웃음 지었다.
이어 "모녀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 본 적은 처음인지라, 저에 대해서도 좀 대입을 해보려고 했다. 워낙 상황이 극적이다 보니 갖고있는 마음은 그랬다. 대입을 해보려다가, 세라가 가진 욕망과 결핍은 엄마한테 오는거지 않나. 자식이 부모에게 애정과 사랑을 원하는건 다 같은 마음 같다"라며 "저희 엄마는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시진 않는데,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서 만족스레 보실 것 같다"라고 답변을 덧붙였다. -
신하균은 인호 역을 맡아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미스터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하균은 "감독님 소개로 최면 치료 전문의를 만난 적이 있다. 목적이나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옆에서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질문하시고, 본인이 감춰둔 고통스럽거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과정인 것 같다"라고 치료 과정에 참여한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정지연 감독은 데뷔작에서 배우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과 함께했다. 그는 "스스로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어 천우희에 대해 "정말 끝까지 가는 것 같다. 매 컷 자기 비판적일 정도로 몰두해서 스스로 연기를 관찰하고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기 위해 많은 걸 쏟아부었다. 영화에 그 에너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신하균에 대해 정지연 감독은 "선하고 악한 이중적인 모습, 그런 두 가지 면을 가진 배우님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제가 확신이 없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다 들어주고, 매 컷 다양하게 변주해서 보여주셨다. 굉장히 감사했다"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이혜영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강렬한 얼굴을 가졌다. 감히 한국에서 그런 얼굴을 가진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근사한 분"이라고 애정을 전한 뒤, "화려함을 거둔 그늘에는 뭐가 있을까 상의했다. 이혜영이 화장도 거의 안 하셨다"라고 '앵커'를 통해 보여줄 새로운 모습을 덧붙였다. -
첫 장편영화의 주요 관계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가져왔다. 정지연 감독은 이에 대해 "제가 딸이고, 엄마가 있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엄마와 딸은 이야기 속에 다양하게 다뤄지진 않은 것 같다. 세라 만큼의 감정은 아니지만 저는 여자이고, 딸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겪고 느꼈던 것들을 꺼냈다. 많은 걸 털어놓지만 많은 걸 이해하지 못하는 가깝고도 멀다는 생각을 한 시기를 떠올리며 반영한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에 강박적이고 집착적인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하지 않나. 특별히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기보다 특수 관계를 통해 보편적 감수성을 끌어내길 바라고 촬영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앵커'라는 직업군과 모녀 사이라는 관계성을 통해 불안과 공포, 트라우마 등 다양한 지점을 이야기하는 영화 '앵커'는 오는 4월 20일 개봉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