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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에는 배우 권상우가 배우 강하늘, 한효주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늘 처음에 이름을 올렸고, '옥상으로 따라와'서 싸워도 이기는 것이 익숙했던 권상우가 주연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악역에 처음 도전했고, 사극에도 처음 도전했다. 데뷔 22년 만의 일이다.
권상우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부흥수 역을 맡았다. 부흥수는 탐라의 왕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고려 말에도 그랬고, 조선 초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라의 존재 이유는 백성이라고 생각한 무치(강하늘)와는 오랜 적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바다에 숨겨진 보물을 갖기 위해 칼을 마주하게 됐다. 판타지 어드벤처 장르의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기둥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서사의 힘이 크다.
권상우는 언론 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 간담회 때부터 '해적: 도깨비 깃발'을 선택한 이유에 "'탐정: 더 비기닝'에서 함께한 김정훈 감독에 대한 신뢰"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쩨쩨한 로맨스', '탐정: 더 비기닝' 등의 작품이 사실 완전 기대작으로 꼽히진 않았잖아요. 그런데 결과로서 관객에게 인정을 받은 실력있는 연출자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김정훈 감독에 대한 신뢰의 이유를 전했다. -
"지금 시점에서 저도 여러 작품에 임하면서 '해적: 도깨비 깃발' 같은 작품에 참여하게 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부흥수' 캐릭터를 멋지게 표현하려고 하신 게 많이 느껴졌고요. 기존에 제가 보여준 캐릭터와 달리 절제된 대사와 분위기로 현장에서 재미있고 신나지는 않았지만요. 그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으로 인해 배우로서 제 스펙트럼도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사극 도전이었고, 악역 도전이었다. 시나리오와 완성본에서 부흥수의 비중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권상우는 "영화의 많은 장면에 등장하면, 좀 더 인상적일 수 있지만요.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역할을 잘 소화해내면 관객에게 전달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시사회 때 보고 만족했습니다. 교두보 역할을 성실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분량에 대해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최후에 대해서는 "항상 이겼는데"라며 "약간 서운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고는 웃음 지었다.
주연으로 이끈 작품보다 분량은 적었다. 하지만 액션에는 진심으로 임했다. '해적: 도깨비 깃발' 촬영 말미 다른 작품에서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해 깁스를 한 채 촬영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권상우는 "예전에 발목 인대 연골을 수술했었는데요. 하필 그쪽 다리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좀 안 좋았죠. 앞으로도 제 숙명이라 생각하고, 잘 관리하고 헤쳐나가야죠"라고 부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
앞선 인터뷰에서 권상우와 액션 합을 맞춘 강하늘은 "고수에게 한 수 배우는 하수의 입장"이라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권상우는 액션에 자신의 아이디어도 보태며 적극적으로 임했고, 강하늘은 덕분에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으로 즐겁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권상우는 "(강)하늘이가 정말 유연하고 가볍게 검술 액션을 잘해서요. '준비 많이 했나?' 생각을 많이 했고요,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잘 이끄는 것을 보고 '해적: 도깨비 깃발'이라는 작품이 더 큰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라고 강하늘에 대한 칭찬으로 답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권상우는 "지난해 '해적: 도깨비 깃발' 말고도 두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요. 되게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였어요"라며 답을 이어간다.
"저도 나이를 들어가면서 여러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죠. 그 맥락으로 볼 때, 요즘 저는 코미디 장르에 치우친 것 같아서요.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부흥수 역할을 잘 소화해내면, 많은 사람에게 '권상우라는 배우에게 다른 모습도 있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좀 더 다양한 문을 열어놓고 싶은 기대감이 있었죠." -
권상우는 지난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해, 22년 동안 배우의 삶을 이어왔다. 그 시간 동안 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 '슬픈 연가'(2005) 등의 작품으로 '한류스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권상우다.
"어릴 때는 정말 바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스템도 잘 모르겠고요.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어요. 한창 사랑을 받을 때는 뭔지도 모르고 지나간 것 같고요. 그런데 결혼하고, 제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모든 게 꿈만 같더라고요. 제가 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연기를 잘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갈수록 겸손해지고, 활동하는 것에 대해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일할 때 더 재미있고, 제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으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정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신인 때보다 작품 욕심도 더 커졌고요. 나이를 먹어가며 강박도 생기는 것 같아요. 남아있는 시간 안에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습니다." -
그런 면에서 가족은 권상우의 원동력이다. 권상우는 '해적: 도깨비 깃발'에 도전할 때도, 아내이자 배우 손태영의 조언을 구했다. "여보 어때? 라고 물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해봐. 이런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라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었고요. 그게 힘이 됐어요. 특히, '해적: 도깨비 깃발'이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뿌듯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손태영과 아이들은 미국에 있지만, 권상우는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일 끝나면 가족에게 가고요, 일할 때는 몰두할 수 있어요. 가족에게 가는 비행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좋은 작용도 하는 것 같아요. 매일 보고 싶고, 같이 있을 때는 떨어져 있을 때의 그리움을 알아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요. 사실 매일 영상 통화해서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작품 하면서는 이걸 잘 해내야 가족을 보러 갈 수 있겠다는 생각해요. 항상 힘이 돼요. 예쁜 사진, 영상을 보내주면, 그걸 보고 힘을 얻어요. 제 삶의 가장 큰 안식처이자, 가장 큰 울타리라서 좋은 것 같아요."
권상우의 차기작도 결정됐다. '탐정: 더 비기닝'에 이어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함께한 김정훈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다. 권상우는 "차기작으로 김정훈 감독님과 OTT 드라마를 하게 될 것 같고요. 미리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새해부터 작품 개봉과 차기작 소식까지 전한 권상우에게 새해를 맞아 어떤 계획이 있을까.
"제가 연초에 종합검진을 받거든요. 좋은 경과가 나오면 한 해를 시작하는 좋은 스타트가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게 건강이니까요. 건강하게, 안 다치고 한 해를 보내면 좋겠고요. 빨리 팬데믹 상황이 끝나서, 정상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하다 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웃음)"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