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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는 게 숨이 차요'라는 문구에 마음이 먹먹하다. 해당 문구는 영화 '거인'의 포스터에 배우 최우식이 아래로 낙하하는 듯한 모습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 해, 최우식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시작으로 '배우 최우식'을 여러 자리에 각인했다. 드라마 '짝패'로 데뷔한 후, 영화 '경관의 피'와 드라마 '그해 우리는'으로 대중과 만나는 현재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속에는 영화 '거인'도 '기생충'도 모두 담겨 있다.
영화 '경관의 피'는 위법 수사도 개의치 않는 광수대 에이스 강윤(조진웅)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경찰 민재(최우식)의 위험한 추적을 그린 작품. 최우식은 민재 역을 맡아, 강윤을 감시하는 임무와 그에게 물들어가는 자신의 모습까지 다양한 색으로 그려낸다. 액션에 도전한 최우식의 새로운 표정 역시 '경관의 '피를 보는 즐거움이다.
최우식은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기생충'을 찍고 나서 사실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다. 최우식은 당시의 마음을 "더 좋은 작품,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한 배우로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라고 설명했다. -
"제가 완벽하게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배우라는 일에 대한 욕심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에서 '어떤 장르를 해야 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등의 고민이 많았어요. 거기에서 너무 깔끔하게 나온 답이 '과정'이었어요. 영화 현장에서 한 장면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과정, 행복하게 완성할 수 있는 과정을 보고 '경관의 피'를 선택한 것 같아요. 감독님과 첫 미팅에서 부터 현장에서 함께 고민도 같이하고, 제 목소리도 들어줄 수 있는 과정을 꿈꾸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 같아요."
하지만 고민이 뒤따랐다. '경관의 피'는 다른 경찰을 주요 소재로 한 작품과는 결이 달랐다. 범죄 일당의 검거가 목적인 수사극이라기보다, 내부 인물을 의심하고 파헤쳐 가야 한다. 최우식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경찰이 경찰을 의심하고 민재의 눈을 빌려서 함께 박강윤(조진웅)을 의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초반에 보드게임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라고 차별점을 말한다.
그래서 민재의 시점이 중요했다. 관객과 손을 잡고 함께 이끌고 가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최우식은 "조금 다른 접근"으로 민재에게 다가갔다. 강윤을 감시하는 언더커버의 역할인 만큼 얼만큼의 감정 표현을 할지 이규만 감독과 상의하며 만들어갔다. 최우식은 언론시사회에서 '경관의 피'를 통해 "진짜 남자가 된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전하기도 했다. -
"사실 그 말은 제가 포장을 하려고 한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도 현재도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많은 분이 저를 볼 때, 남자다운 걸 많이 못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모습이 최우식이라는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남성미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민재같은 역할이 제가 보여주기에, 저 역시도 믿음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는 색이 아닐까 싶었어요. 제가 좀 비실비실한 이미지가 많아서, 그에 반대되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남자가 된 것 같다'라고 포장한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민재에게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우식은 '경관의 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액션은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유도를 베이스로 둔 액션을 위해 최우식은 액션 스쿨에 가서 남다른 연습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이 사람을 넘기고, 더 사실적으로 이 사람을 제칠까. '마녀'에서도 액션을 했지만, 이번 작품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또 한 번 액션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영화 '존 윅', '매트릭스' 나아가서 '베이비 드라이버' 같은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앞선 공식 석상에서 '경관의 피'에서 함께한 배우 조진웅, 박희순, 권율, 박명훈은 최우식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사냥의 시간' 홍보 때도 박정민, 이제훈, 안재홍 등이 그를 참 애정했다. 어느 현장에 가든, 형들에게 사랑을 받는 최우식만의 비결이 있을까.
"제가 실제로 형들과 케미가 좀 좋은 것 같아요.(웃음) 사실 저도 친형이 있거든요. 형이랑 저랑 나이 차이가 7살이 나요. 그런데 형이랑 엄청 친하거든요. 아무래도 그게 비결이 아닐까요? 자라오면서 우리 형이랑 쌓아온 형제애가 현장에서 발휘되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선배님들께서 저를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죠. 사실 저도 너무 좋아하는 선배님들이시거든요. 박희순 선배님은 '마녀'를 떠나서 그냥 같이 한 자리에만 있어도 제가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어서요. 제가 버벅거릴 때마다 의지를 많이 하는 선배님이세요."
"조진웅 선배님이랑 같이 투톱 버디 무비 장르로 만나는 건, 예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선배님과 호흡 맞추는 게 너무나 큰 일이었고, 이 시나리오를 보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중에 조진웅 선배님이 엄청나게 큰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행복했고, 너무 좋았어요." -
최우식도 어느새 데뷔 10년 차 배우가 됐다. 최우식은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되게 신기합니다"라고 말한다.
"제가 스무 살에 드라마 '짝패'의 아역으로 시작했는데요. 제가 연기를 배우거나, 과정을 밟아서 배우가 된 게 아니라서요. 첫 드라마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아요. 너무 즐겁게 연기를 했거든요. 점점 커가면서 욕심도 생기고, 결과물에 대한 허전함, 작품이 끝난 후의 공허함, 연기 공부를 해나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나에 대한 부족함,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 배우를 보면서 느끼는 부담감 등 다양한 마음이 커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주변에서 '잘한다'라고 해주는 칭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청룡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고도 슬럼프에 빠졌다고 기사가 엄청 많이 났던 것도 사실 제가 부담감이 커져서였거든요. 그런 시기가 있어요. 가만히 돌아보면 꼭 남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시기가 항상 그래요. 상을 받았을 때도, '기생충'으로 사랑 받을 때도, 뭔가 그걸 내려놓고 즐기면서 만족감이 있어야 하는데요. 더 앞으로, 더 큰 보폭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다보니 부담감도 생각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경험인 것 같아요. 드디어 저 자신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최우식은 앞으로도 '천천히' 나아갈 생각이다.
"누구나 똑같겠지만 많이 지쳐갈 때도 있었고, 많이 힘들 때도 있었고요. 확실히 이 직업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10년을 한 게 신기해요. 예전의 저라면 '10년을 버텼다'라고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버틴 게 아니라 10년 동안 정말 좋은 여정이었거든요. 물론 그때는 정글 숲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좋은 사람들도 너무 많이 만났고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저를 소개해주실 때 가끔 '천천히 가고 있는'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전 그 말이 너무 좋아요. 천천히 쭉 가고 싶은 생각이에요."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