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새롭다. 김재영이 그렇다. 외면만 보면 차갑고 도도할 것 같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그렇지 않다. 연신 미소를 지으며 그 공간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꾸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 집에서도 막내둥이라는 김재영은 스스로를 "댕댕이 같은 면도 있다"며 반전 매력을 적극 어필했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으로 연기적 변신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는 연기력을 뽐낸 김재영이다. 작품에서 가장 중심을 잡기 어려운 캐릭터였음에도 그것을 해낸 것이 김재영이다.

'너를 닮은 사람'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제 인생의 조연'이 되어 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작품 설명만 보면 두 여자의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 어떤 것보다 깊숙이 박힌 한 남자가 있다. 김재영이 연기한 '서우재'다. 우재는 해원(신현빈)의 미대 선배이자 연인이다.  하지만 해원이 가르치던 제자 정희주(고현정)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 위태로운 삼각관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을 마친 김재영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서우재'를 통해 처음으로 장발에 도전한 그는 작품을 마치고도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적응이 됐다. 다음 작품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기르고 있다"고 말한 그는 극 중 우재와 달리 활기가 넘쳤다.

'너를 닮은 사람'은 고현정의 복귀작이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현빈, 두 배우의 투톱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방영 전만 하더라도 김재영이 연기한 우재의 존재감은 숨겨져 있었다. 본격적으로 극이 전개되고, 김재영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반응도 뜨거웠다. 비주얼부터 아티스틱 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기억을 잃고 되찾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마저 눈빛으로 표현했다.

2~3%대의 시청률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고정 시청층은 탄탄히 잡았다. 동시 공개된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기간 내내 오늘의 톱10에 진입했다. 김재영에게 '너를 닮은 사람'은 성적보다도 더 중요한 뭔가를 얻게 한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기대감이 컸어요. 잘 되겠구나 싶었거든요. 고현정 선배님이 워낙 잘 된 작품들이 많으셔서 저도 내심 기대를 했죠. 감독님도 작품을 찍으시면서 시청률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게 좋은 작품이고 도움이 될 거라고 해주셨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되게 행복해요"

김재영를 슬럼프에서 건져내준 작품이 바로 '너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갔다. 김재영의 연기 인생에 이 작품은 잊을 수 없는 한 지점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 직업을 하는 게 맞나 하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전 작품 끝날 때쯤엔 '나는 왜 이럴까' 그런 고민에 빠져서 많이 헤맸던 것 같아요. 다른 작품을 연달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쉬고 싶었어요. 다른 걸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도 없고 불안하고 자신감도 떨어졌죠"

"고민했던 게 '연기를 왜 하고 있나' 였어요. 당연히 금전적인 부분도 있고 나이도 있어서 여태껏 해온 일이라. '내가 가능성이 있나. 행복한가'하는 시기였는데,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만난 게 '너를 닮은 사람'이었어요"

처음으로 도전한 장발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김재영은 장발 변신으로 여성 팬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처연하면서도 아티스틱 한 모습이 극 중 조각가인 '서우재'와 찰떡같이 어울렸다. 머리를 기른 것도 노력이라면 노력이지만, 우재를 위해 15kg이나 감량했다.

"살을 빼게 된 건, 주말드라마 하면서 조금 관리를 못 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우재라는 캐릭터가 아일랜드 병원에 오래 누워있었잖아요. 게다가 예민한 예술가적인 느낌 때문에 슬림 하고 얼굴이 야위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주말극 찍을 때보다 15kg 정도 뺐어요. 제가 예전에도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어서 방심하면 확 쪄요. 관리 안 하면 15kg 왔다 갔다 하죠"

우재는 사랑에 빠졌다기보다 사랑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김재영에게도 집착의 대상이 있을까.

"우재는 내가 좋아하는 걸 추구하고, 예술적으로도 추구하는 바가 있는 사람이에요. 저도 모델 하겠다고 다이어트를 해서 30kg 정도 뺐는데 그때 생각하면 우재처럼 끈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땐 어릴 때, 젊을 때였으니까요"

"표면적으로는 '살'인 것 같아요. 다이어트요. 제가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빨리 찌거든요. 세 끼를 다 먹으면 안 돼요. 웬만하면 닭 가슴살 먹어야 하고, 주말드라마 할 때도 매일 촬영을 하다 보니까 귀찮아서 도시락 안 싸고 일반 식사를 하게 돼서 살이 점점 찌더라고요"

배우로서 겪은 슬럼프였지만, 김재영은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우 김재영이자 사람 김재영이 살아갈 길을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사랑에 대한 고민에 한참 빠져 있을 때가 있었어요.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보살핌 받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사랑이 뭘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굴까라고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예쁜 사람 보면 혹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 사람이 나랑 생각이 비슷한가 유머 코드가 잘 맞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 결핍적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는 되게 조바심이 많았어요. 연기에 대해 욕심이 많이 났었는데, 지금은 관심이나 욕심 같은 부분은 내가 연기 잘 하면 다 따라오고 그렇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