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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로운 세상에 온 '유아인'을 환영합니다

기사입력 2021.12.06.17:47
  •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지옥'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배우 유아인은 최근 진행된 시상식에서 배우 이정재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지옥'을 전 세계에 공개한 바 있는 유아인은 앞서 공개된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이정재의 느낌을 물었다. 이정재는 대중의 반응과 함께 유아인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희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

    유아인은 OTT(Over The Top의 줄임말로,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출연작을 공개하게 되며, 기존에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꼈다. 넷플릭스를 통해 '지옥'이 공개되기까지 영화 개봉일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기다렸고, 일주일에 많아야 두 편 공개되는 드라마와 달리 전편이 한꺼번에 공개되는 시리즈 '지옥'을 통해 한국뿐만이 아닌, 본 전 세계 관객을 마주하게 됐다.

    "'어떤 반응이 다가올까'라면서 우려 반, 기대 반 감정으로 기다린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사실 좋은 반응을 보내주고 계시는데요. 이것들을 뭐라고 정의하거나, 제 안에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감정이라서요. 지금의 느낌들을 수렴하면서 앞으로의 배우 인생을 조금 달리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유아인은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 역을 맡았다. 정진수 의장은 새진리회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새진리회는 죽는 시간을 고지받은 인간이 정확히 그 시간에 지옥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을 배경으로 급부상했다. 정진수는 고지를 받고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대중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라는 명확한 교리를 전한다. 사실, 그는 20년 전, '20년 후 지옥에 간다'라는 고지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20년의 시간 동안 새진리회의 교리를 완성했다.

    "고지를 받고, 20년 동안 추측하기 어려운, 혹은 추측해 봄 직한 고통과 번뇌 속에 살아온 인물의 성격과 삶의 결이 얼마나 인물을 괴물로 만들 것인가. 인물의 내면을 얼마나 뒤틀린 상태로 이끌어갈까. 이런 질문이 정진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에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표현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닿았던 것 같아요."

    유아인이 전작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말을 하지 못했던 캐릭터를 맡았던 것을 떠올리면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은 대사량이 참 많았다. 작품 속에서 인터뷰에 응했고, 자기 생각을 다수의 사람에게 혹은 한 명의 사람에게 강하게 전달해야 했다. 특히, 정진수 의장(유아인)과 진 형사(양익준)의 독대 장면은 약 5분여에 걸친 A4 종이 사이즈 2장 분량의 대사량을 원테이크(카메라를 끊지 않고 촬영을 한 번에 이어가는 방식)로 소화해냈다. 무려 당일날 아침에 받은 대사였다. 연상호 감독은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유아인에겐 사실 다 계획이 있었다.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감독님께서 배우들을 모아놓고 촬영 전, 그 장면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셨어요. 그 장면의 설계 같은 것을 미리 알려주신 거죠. 굉장히 구체적으로 촬영 계획이 있었는데요. 감독님은 긴 연기와 대사를 관객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여러 연출적 장치를 마련해놨다고 하셨어요."

    "'그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연기를 해내고 말리라'라는 각오가 생겼죠. 연상호 감독님의 설명이 저를 오히려 자극한 거죠. 장치를 벗고, 효과를 입지 않고도, 연기를 통해 텐션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요. 당일 감독님께서 굉장히 격양된 감정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버전의 수정된 대본을 주셨는데요. 제가 사실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가 아니고, 현장에서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배우의 입장이라 그 부분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내면화된 정진수의 에너지와 조금 결을 달리하는,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겉으로 표현되는 연기를 요구하셔서 이걸 뻔하지 않게 변주하면서 정진수의 비밀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그 정도 고민을 한 것 같아요."

    유아인으로 인해 다양한 감정, 괴이한 표정, 뒤틀린 인간 정진수가 완성됐다. 유아인은 어려웠던 장면으로 뉴스 인터뷰에서 "새로운 세상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사를 꼽았다. 그는 "대사의 무게나, 대사가 형성하는 어마어마한 레이어가 있는데 그걸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장면인 것 같아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지옥'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지옥' 속에서 정진수는 새로운 세상을 이끌었다. 유아인은 '지옥'의 4~6화를 어떻게 봤을까.

    "굉장히 멍청한 존재들이 이끌어가는 괴상한 세상이 도래했죠. 사실 그 세상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과 '어느 정도 닿아있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들의 통제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우리로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지옥'의 세상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유아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정진수 의장을 연기한 유아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질문에는 역시나 "제가 부딪히는 거 많이 보셨잖아요"라며 웃음으로 답변이 돌아온다.

  •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아인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아인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의구심이 드는 것들에는 항상 의문 그 자체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의문을 품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를 저는 굉장히 싫어하고, 그런 세상은 인간다운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며,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고요."

    "우리를 움직이는 힘, 우리에게 주입되는 정보들, 우리에게 다가온 지식, 혹은 우리가 강요받는 믿음에 대해 무조건적인 의심이 아닌,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편 가르기가 만연한 세상에서 정신 차리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가볍지 않게, 조금 더 무게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싶다는 핑계를 통해 점점 덜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면, 유아인은 최근 무엇을 의심하고, 검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유튜브를 통해 '목 스트레칭' 하나만 검색해도, 백여 명이 다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외치고 있어요.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백 명, 천 명이란 말이에요. 그럼 어떤 정보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정보를 흡수해야 할까요. 그걸 필터링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되거든요. 계속 검증하며 진실에 근접해갈 것, 유연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들 그 사람의 말은 틀리고 내 말은 맞다고 하다 보면, 스트레칭이 필요한 우리의 목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거죠."

    "웃기지만, 많은 부분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그런 식으로 되어있지 않나 싶어요. 그중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런 현실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좋은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유아인이 이정재의 말을 인용했듯,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여전히 유아인이고, 그 삶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더 열심히 말이다.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완전히 변화한 작품을 선보이는 환경 속에서 배우들에게 전과 다른 피드백이 주어지겠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어오던 연기 방식을 하루아침에 글로벌한 연기로 바꿔서 할 수는 없는 거고. 사실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를 계속 연구하고, 쌓아나가고, 표현해내고, 관객에게 던지면서 그 반응을 살피고, 더 좋은 다음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밖에는 다른 마음가짐은 없는 것 같아요."

    새로운 세상에 온 '유아인'을 관객의 입장으로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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