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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징어게임', 어찌보면 황동혁 감독 그 자체인 이야기

기사입력 2021.10.10.00:01
  •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어린 시절에 했던 게임을 해서 이기면 상금 456억 원을 갖고, 지면 자신의 목숨 내놓아야 하는 의문의 서바이벌. 이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넷플릭스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 여파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게임 등 '오징어 게임' 속 추억의 게임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고, 운동복과 달고나 게임 등의 굿즈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말 큰 판이 되어버렸다. 황동혁 감독 역시 "잘 되자고 만든 거지만, 이럴 줄 상상도 못 해서요. 좋다가도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역대 최고의 넷플릭스 시리즈"라는 말까지 나왔다.

    황동혁 감독 자신에게서 비롯된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랬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떠올린 것은 2008년도였다. 자신의 첫 장편 영화 '마이 파더'를 개봉하고 1년 후다. '마이 파더'는 배우 김영철, 다니엘 헤니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논란이 있었고, 손익 분기점에 크게 못 미치는 90만 명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입봉작의 저조한 성적표에 다음 작품이 흐릿해졌다. 먹고살 돈도 걱정이었다. 2008년의 황동혁 감독이 극단적으로 '큰 상금의 데스 게임'을 떠올리게 된 이유다.

  • "그때가 경제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하다가 작품이 엎어지고, 대출도 있고, 빚도 있고, 이런 어려운 시기에 '데스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오징어 게임' 속 캐릭터 성기훈(이정재)과 조상우(박해수)는 빨간색과 파란색 같이 언뜻 정반대의 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황동혁 감독의 모습이다. 황동혁 감독은 조상우처럼 서울대 출신이기도 하다.

    "저 자신을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 안의 다른 자아들을 꺼내 캐릭터를 만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기훈과 상우를 보고 '제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준호(위하준)는 영화 대본을 쓸 때는 없었는데요. 시리즈로 늘리면서, 내부를 관찰자 시점으로 볼 인물이 필요할 것 같아 만들어낸 캐릭터예요. 강새벽(정호연)은 처음 대본을 썼을 때는 탈북자도, 여자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후에 여자 캐릭터로 바꾸고 탈북자 설정을 추가한 것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마이너리티의 대표성을 띤 캐릭터로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알리(아누팜 트리파티)도 같은 이유였고요."

  • 그래서 성기훈과 일남(오영수)의 이름도 주변에서 가지고 왔다. 네티즌 사이에서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 일번 남자'의 줄임말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은 "일남은 제 중학교 때 친구 이름"이라며 웃음 지었다. 친구의 이름에 '오징어 게임'의 '오'를 붙였다고. 성기훈 역시 친구의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 게임으로 456억원이라는 상금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건 서바이벌을 벌인다.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속 나올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가져온 캐릭터들로 인해 너무나 현실과 맞닿아있다. 기훈을 '오징어 게임'에 내몬 것은 자동차 회사 '드래곤 모터스'의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거기에 맞선 파업에 참가했고, 끝내 해고됐기 때문이었다. 이는 십여년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를 연상케한다.

    "쌍용차 문제는 기사로 계속 접하고 있었어요. 구조 조정에 따른 파업, 해고, 실직, 그에 이어지는 소송, 복직 투쟁, 해고자 가족의 자살 등 뉴스에서 접한 이야기였는데요. 기훈 캐릭터를 만들 때, 중산층에 있던 평범한 사람도 해고와 그 이후 이어지는 자영업의 실패 등의 과정으로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불완전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한국이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코로나 펜데믹이 빈부격차를 더 벌려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분이 공감하시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에 일면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마지막 대사를 넣은 건데요. 기훈의 대사죠. 누가 우리를 게임판 위의 말처럼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궁금해하고, 물어야 하고, 분노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논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데스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수 언급되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은 "기본적 전제가 비슷하죠. 힘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들을 게임장에 몰아넣고, 게임을 하게 한다는 클리쉐인데요. 현대 사회의 비유? 우화? 어떤 알레고리처럼 만들고 싶어서 그 전제는 같을 수밖에 없고요"라며 '오징어 게임'만이 가진 차별성을 설명한다.

    "차별점이라면 '오징어 게임' 안에는 영웅이 없죠. 보통 '데스게임'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위너가 존재하는데요.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기훈 조차도 많은 운과 남의 도움으로 헤쳐나가잖아요. 똑똑하고 잘난 영웅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우린 여전히 루저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게 가장 차이점이고요."

  • "보통 데스게임물은 강제로 게임을 시키는데, 저는 나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자발성을 준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게임을 가져온 것은 간단해요. 게임 룰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몇 초 걸리지 않죠.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를 넘어서 사람의 감정이 더 잘 보이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게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서 꺼낸 이야기에 고충도 있었다. 이가 6개나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황동혁 감독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이라고 회상했다.

    "'오징어 게임'이 시간으로 하면, 총 8시간 이거든요. 영화 4편을 동시에 만드는 거잖아요. 혼자 쓰고, 촬영을 하고,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몸이 정말 많이 상했어요.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모아니면 도고 망작 아니면 걸작이라는 소리를 들을 거란 마음으로 도전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리스크에 대한 부담감도 컸고요."

    과연 '오징어 게임'의 시즌2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몸이 망가져서 다시 이 작품을 또 혼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다음에 영화를 구상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 작품을 먼저하게 되지 않을까 싶고요. 다들 원하시면, 제가 뿌려 놓고, 저질러 놓은 게 있으니, 책임지려면 수습해야하지 않을까.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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