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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다른 삶을 꿈꾸곤 한다. 지금의 내가 아닌, 더 멋지고 완벽한, 더 이상적인 존재로 사는 삶 말이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메타버스를 소재로, '또 다른 나'로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숨기고 싶은 결핍, 화려함 속에 가려진 내면, 그리고 이것을 직시하는 것의 중요성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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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동화적인 느낌을 풍기는 '용과 주근깨 공주'. 주인공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내성적인 소녀 '스즈'다. 여느 아이처럼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스즈는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 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빠와의 대화는 단절됐고, 절친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그리 활발한 교우 관계를 맺지 않는다.
등교를 하려면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역으로 간다. 곧 이 버스 노선은 사라진다. 스즈의 공간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런 스즈에게 들려온 핫한 소식이 있다. 바로 가상세계 '유(U)'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가상세계 '유(U)'에 모인다. 스즈는 그 어떤 것보다 개방된 세상에 발을 디딘다. -
유에서는 '아즈(As)'를 통해 유저를 현신화한다. 아즈는 '보디셰어링'이라는 기술로 실제 유저를 아바타화한 것이자, 유저의 숨겨진 힘을 담아낸 그릇과 같다. 평범한 이목구비에 단발머리, 하얀 피부에 도드라지는 주근깨까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스즈에게 '유'는 과분하게 아름다운 아즈를 선사한다.
'방울'이라는 뜻을 가진 스즈는 자신의 아즈를 '벨(Bell)'이라 정한다. 스즈는 벨을 통해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이후 가상세계에서 단숨에 인플루언서로 거듭난 스즈(벨)는 유 속에서만큼은 톱스타의 삶을 산다. 그러다 우연히 의문의 존재 '용'을 마주하고, 큰 상처를 가진 듯한 용에게 마음이 쓰인다.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벨과 용.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간다. -
'용과 주근깨 공주'는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3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그간 3년 주기로 신작을 보여준 그는 오랜만에 교복을 입은 소녀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관객을 찾았다. 여기에 이미 '썸머워즈'를 통해 온라인 가상 세계 오즈(Oz)를 선보인 바 있는 감독이 '용과 주근깨 공주'를 통해 더 확장된 세계관을 펼쳐냈다.
'메타버스 힐링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은 우리 미래의 예고편 같다. 곧 현실에도 가능하게 될 메타버스 세계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현실 사이 괴리를 겪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속에서도 호소다 마모루는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결핍을 가진 주인공이 아픔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가족애와 인간애를 그려내며 어느새 치유감을 느끼게 한다. -
이번 작품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작화다. 스즈의 세상과 '유'의 작화 차이 덕에 마치 각각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이다. 가상 세계 속 벨을 구현해낸 건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상진이다. 이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모아나', '라푼젤'에서 활약한 그는 재패니메이션의 색감이 더해진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가진 일본 싱어송라이터 나카무라 카호가 '벨'을 맡았다. 처음으로 성우에 도전한 나카무라 카호는 작품 속 연기와 가창, 그리고 일부 사운드 트랙의 작사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비주얼과 음악, 스토리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덕에, '용과 주근깨 공주'는 제74회 칸 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호평과 함께 마쳤다. 또한, 일본에서는 개봉 57일 만에 누적 관객 423만 명을 동원, 흥행수익 58.7억 엔을 돌파하며 호소다 마모루 감독작 중 최고 성적을 거뒀다. 메인 테마곡 'U'는 오리콘 주간 디지털 싱글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수록곡 '노래여', '마음의 곁에'도 음원 순위 상위를 기록하며 'OST 맛집'임을 입증했다.
호소다 마모루 표 힐링에 메타버스 판타지를 가미한 '용과 주근깨 공주'는 오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러닝타임 121분. 전체관람가.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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