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방관자이지는 않았을까."
배우 정해인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자신이 보여준 캐릭터 안준호를 통해 자신을 돌아봤다. 스스로 질문을 던졌고, 이를 보는 이들도 그렇기를 바랐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사로잡는 연하남인 줄만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단단해졌을까. 'D.P.'는 사회적 함의와 함께 배우 정해인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안준호는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상병으로 등장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는 이등병으로 등장한다. 준호는 입대하기 전날까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가족에게 전해주고는 부대로 떠나는 인물이다. 어딘지 모르게 죄인같아 보이는, 죄책감을 몸에 두른 인물. 정해인은 완벽하게 안준호의 옷을 입었다. -
"전작과는 상반된 이미지였죠. 이렇게 극단적으로 군대라는 곳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적도 없었고, 또 전에는 멜로 작품 속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준호를 연기하면서 참 고민도 많이 되고, 어떻게 표현할지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도 많았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연기를 마친 후에도 '내가 잘 해낸 걸까' 의심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잘 편집해주시고, 후반 작업을 잘 만들어주셔서 공감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습니다."
'D.P.'는 공개된 후 군 생활의 리얼함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온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였다. 위계 질서가 정확한 군대에서 선임은 후임을 자신의 마음대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고, 당연했기에 힘듦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첫 촬영 날, 관물대 속 모포의 각까지 완벽했던 현장에서 정해인은 '이병 안준호'라는 대사를 '이병 정해인'으로 외쳐 NG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 'D.P.'의 현장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군 생활이 생각났어요. 이등병은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이에요. 대답도 잘 해야 하고요. 모든 선임의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민첩하게 반응을 해야 하죠. 저는 좀 그런 편이었던 것 같아요. 귀를 열고, 주시하고, 'D.P.' 속에서도 모두가 살아있는 연기를 하다 보니 저도 계속 반응하고 리액션을 해야 했어요." -
"사실 어렵게 촬영했어요. 장소 섭외가 어려웠던 지역도 있었고, 비슷한 이유로 계속 촬영장이 바뀌는 일도 있었어요. 그걸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잘 그려내 주셔서 현장에서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두 고생해서 촬영했는데, 많은 관심과 호응을 해주셔서 저는 그게 가장 고생한 보람이라고 생각하고요. 가장 촬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5, 6화가 휘몰아치는 촬영이었는데요. 그때는 조현철 배우님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아주 답답했고, 슬펐고, 화도 났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었는데요.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군 생활도 많이 연상됐고, 실제로 'D.P.' 현장에서 위병소를 나가는 순간은 촬영임에도 약간 들뜨기도 했다.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던 정해인은 육군 큰 트럭도 몰아봤고, 운전병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운전실력도 늘었다. 호열(구교환)처럼 자신을 챙겨준 선임도 있고, 현재까지 함께 군 생활했던 후임들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최근에는 "'D.P.'를 재미있게 봤고, 군 생활이 많이 생각났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
대중은 'PTSD가 올 정도'라고 했지만, 실제 현장은 따뜻했다. 한준희 감독은 배우들을 '형'이라고 부르며 존중했다. 귀 기울여 들었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해인은 "제가 감독님보다 동생인데요. 감독님은 저에게 '해인이 형'이라고 불러요. (구)교환이 형한테도 '교환이 형'이라고 하고요. 모든 배우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쓰시는데요. 거기에서 감독님의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배우를 존중해주시고 엄청 배려해주세요"라고 현장을 회상한다.
"촬영장 분위기는 정말 '이런 촬영장이 앞으로 계속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따뜻하고, 훈훈하고, 배우들끼리도 서로 믿음이 있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누가 봐도 느껴질 정도로 좋은 현장이었어요. 중심에선 감독님께서 가장 크게 중심을 잡아주신 것 같고요. 정말 모든 배우가 각자 맡은 배역에 빠져들어서 완전히 녹아 연기했어요. 촬영장에서도 그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그리고 정말 인터뷰 자리를 빌려서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
정해인의 다른 모습이었다. 눈빛에는 따스함을 거두고 경계심을 채웠고, 피부는 거칠고 투박했다. 인생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다른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정해인은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것은 늘 하고 싶죠"라며 욕심을 전한다.
"안준호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도 사실 저 안에 있는 모습이에요. 어느 정도는 있었고, 또 어떤 부분은 스스로 발견한 지점도 있어요. 안준호를 연기하면서 정해인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우울함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힘들 때도 표현하는 법이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제가 우울할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준희 감독은 'D.P.'가 사회적 함의를 가진 작품이라고 했다. 시즌 1을 마친 정해인 역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고, 스스로 돌아보게 된 지점도 있었다. -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하는 군인들을 '군인 아저씨'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사실 20살, 21살 정도인 20대 초중반 청춘이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간부들도 있겠지만요. 이들 모두 몸도 마음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고요. 'D.P.'를 보고 '살면서 우리도 방관자이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스스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요."
현재 한준희 감독과 김보통 작가는 'D.P.' 시즌 2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과연 시즌 2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시즌 2에서는 일병 안준호의 모습이 그려지겠죠. 병장이 된 호열이 왜 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과거 서사가 나올 수도 있고요. 여러 서사를 추측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준호도 호열이처럼 총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고요. 잘하면 원작에서 안준호 상병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겠죠. 저도 궁금한 마음입니다.(웃음)"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