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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서 천만 배우 황정민이 납치됐다. 이를 배우 황정민이 담아냈다. 이 두 줄로 기대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기대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부응해냈다.
'인질'의 시작은 황정민의 수상소감이다. 2005년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전한 가장 유명한 수상소감. "나는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소개합니다. 60여 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수상소감으로 자연스레 관객은 다큐멘터리 같은 시점을 갖게 된다. 분명히 극 영화이지만, 실제와 같은 캐릭터. 독특한 지점으로 출발한다.
시작 후, 10분 만에 극은 전개된다. 황정민은 영화 '냉혈한' 제작 발표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강남 한복판에서 의문의 세 남자에게 납치당한다. 몸이 결박된 상태에서 그는 얼굴을 맞은 뒤, "이따 인터뷰 가야 하니까 얼굴은 때리지 말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먼저 납치된 또 다른 인질 반소연(이유미)을 보고 깨닫는다. '아, 장난이 아니구나.' 황정민 만이 아니다. 관객도 알게 된다. '아, 장난이 아니구나.' -
필감성 감독은 영화의 컨셉부터 소소한 디테일까지 '천만 배우 황정민'에게 많은 부분을 기댄다. 사실 그러려고 했고, 황정민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임했다. 영화의 첫 문을 여는 밥상 수상소감에서 황정민은 스태프들이 밥상을 차려줬다고 했지만, '인질'에서 만큼은 황정민이 밥상을 차려준 느낌이다. "드루와" 등의 황정민의 명대사는 영화 속에서 주위를 환기하는 요소로 적절하게 사용되고, 전작의 캐릭터 서도철 형사까지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심지어 황정민은 "브라더"로 통하는 배우 박성웅의 캐스팅까지 직접 해냈다. 황정민의 납치극을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낯선 신인 배우들을 기용했고, 그 대조점 천만배우 황정민과 그의 브라더 박성웅이 있다. 이 자체로 완벽하게 꾸려진 앙상블이다.
황정민은 영화 '베테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작품을 통해 이미 액션 연기로 강한 믿음을 준 바 있다. 두 작품은 극 영화로 짜여진 합이 있었다. 하지만 '인질'은 실제 황정민과 배우 황정민의 경계에 머문다. 액션 역시 "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카체이싱도 간결하지만, 충분히 긴박하다. 필감성 감독은 "오늘 오면서 차 사고 봤어"라고 누군가 말할 것 같은 카체이싱을 추구했다고 했고, 그 몫을 고스란히 챙겼다. -
필감성 감독의 재치 있는 시나리오와 연출, 여기에 캐스팅 오디션부터 함께한 황정민의 판을 완성한 것은 딱 봐서 이름을 기억해내기 어려운 낯선 배우들의 몫이다. 특히 황정민을 납치한 조직의 리더 최기완 역의 김재범은 그 자체로 힘을 보여준다. 손때가 꼬질꼬질 묻어있는 삶에 별다른 애착이 없는 표정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또한 조직원 염동훈(류경수), 용태(정재원), 고영록(이규원), 샛별(이호정)은 황정민 쪽으로 절대 기울지 않는 아슬아슬한 시소를 완성한다.
황정민의 말처럼 한 달 여 전부터 작업실을 빌려 연습한 결과일 수도 있다.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유미는 황정민 이전에 납치된 또 한 명의 인질, 반소연 역을 맡아 공간의 공포감과 긴박감을 더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들이 모여 '인질'을 완성해냈다.
초반에 살짝 묻어있는 연극 톤이 있고, 강남대로와 납치범들의 공간에 강한 콘트라스트가 있지만, '인질'을 보고 즐기는 데는 무리가 없다. 밥상에 오른 밥과 찌개, 주요 메뉴, 밑반찬 모두 각자의 맛을 매며 한 상 가득 어우러지니 수저가 어디를 향해도 즐겁기만 하다. 이른바 황정민과 아이들이 태워주는 94분의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