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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을 떠올리면 많은 이미지가 스쳐 간다. '드라마 '별을 쏘다'(2002) 속 순수한 성태도, '발리에서 생긴 일' 속 주먹 눈물을 보여준 정재민도, 영화 '비열한 거리' 속 비틀거리는 병두 등 모두 그가 만든 인물이었고, 이미지들이었다. 1998년 패션 브랜드 모델로 데뷔한 이후, 23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여줬지만, 그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조인성은 영화 '모가디슈'에서 강대진 참사관 역을 맡았다. UN 회원국 가입을 위한 외교전을 위해 한국에서 이역만리 소말리아로 파견된 안기부 출신의 인물이다. 조인성은 "안기부라는 말만 들어도 시대가 주는 묵직함이 있잖아요. 그런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동시에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라며 인물에 주안점을 둔 부분을 전한다.
"'모가디슈'는 상업 영화 입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마블 영화를 보면, 상황은 심각해도 캐릭터 고유 유머 코드로 관객들이 숨을 쉬는 포인트를 주기도 하잖아요. 그 포인트를 잡아내려고 노력했어요. 탈출이 엄숙하고, 진지하고, 장황하고, 무겁잖아요. 캐릭터로서 지나치게 가볍지 않은 유머를 놓치지 않게, 다른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케미에 집중한 것 같아요. 달래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하고, 여러 모습이 모여지면서 벽돌을 쌓듯이 캐릭터를 구축해나간 것 같아요." -
'모가디슈'의 줄기에는 남과 북이 있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사람들의 탈출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남과 북을 조금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멀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둘 필요성이 있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조인성은 "남북에 대한 시선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체감으로 느끼는 게 있을 거예요"라며 답변을 시작했다.
"사실 신파가 나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필요한 부분이고, 관객들도 반응해주는 부분이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조금 차갑게 그려지지만, 그로 인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거죠. '모가디슈'를 본 관객들이 더 다양한 감정으로 와닿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관객의 반응으로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데이터가 쌓여야지, 길을 찾게 되는 거고요. 이번에는 차갑게 그려봤으니 조심스레 반응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앞서 '모가디슈'의 시사회에서 조인성은 "앙상블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영화"의 일원이 되고자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확실히 '비열한 거리', '더 킹' 등 중심에서 작품을 끌고 나가던 조인성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영차'하고 끌고가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모가디슈'를 통해 보여줬다.
"감독님을 제외하고, 우리 영화에는 큰 거목 두 분이 계시잖아요. 김윤석, 허준호 선배님. 덕분에 저는 제가 가진 몫만 다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 외적으로는 신경을 덜 써도 되고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영화를 찍다 보면, 스태프의 안녕, 제작비가 주는 중압감 등 외적으로도 신경 쓸 것이 간혹 있거든요. 조금 더 가벼운 느낌으로 임할 수 있었어요. 중압감을 나눠 가질 수 있음에, 몸이 가벼운 상태에서 작품을 했다고 봐야 하나요?"
"전반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도 굉장히 멋지지만, 최근에 영화들을 보면서 캐릭터가 좋고, 그 캐릭터를 통해 배우가 자신의 몫을 다해낸다면, 앙상블을 통해 좋은 영화도 만들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제가 주연이 되어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작품도 하게 됐지만, 제가 필요하고, 캐릭터가 괜찮다면, 역할을 통해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보는 일원으로서도 움직여보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요.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거예요. 사실 많이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첫 경험을 (김)윤석 선배, (허)준호선배,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운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모가디슈'는 마흔이 된 조인성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조인성은 "사실 '안시성'끝나고 '모가디슈'를 재빠르게 선택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개봉이 뒤로 간 감이 있어서 오랜만이 되었네요. 드라마 한편 찍는데도 6개월~1년 정도 걸려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차태현 선배님의 제안이 있었고, 유호진 PD를 만나게 됐고, 어떤 식으로든 빨리 인사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어쩌다 사장'을 찍게 됐어요. 지금은 '밀수'를 찍고 있고, 이 작품 끝나면 '무빙'을 찍을 예정이고요. 올해 농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네요. 내년에는 더 자주 인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조인성은 최근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해 속내를 털어놨다. 배우로서 '조인성'이라는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그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말했다.
"제로값에 놓여있는 상태 같아요. 왜냐면 '넥스트'는 항상 공평한 것 같거든요. 일이 잘되어도, 안 되어도,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제로값인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항상 '넥스트'와 만나는 일인 것 같아요." -
지금의 그는 편안한 상태다. "옛날엔 많이 과했죠, 죄송합니다"라고 너스레를 떤 뒤, 조인성은 지금 느낀 연기에 대한 재미를 답한다.
"저도 깎이고 깎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잘하면 좋았겠지만, 그랬더라면 교만했겠죠. 지금의 과정을 통해 편안하게 보인다면 고맙고, 어떤 연기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요. 안되면 어쩔 수 없죠. 최선을 다한 거니까요.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다만, 세월이 주는 원숙함이 생기는 건 아닌가, 나이가 주는 장점도 있지 않나 싶어요."
여전히 도전을 계속해나가는 배우 조인성의 엣지를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