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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민아에게 놀랐던 순간이 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봄'에서 함께한 배우 박지훈, 배인혁과 함께 고민 상담을 해주는 영상에서 우주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그 속에 사는 나는 작은 점에 불과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역시 작은 점에 불과하니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고 말했을 때였다. 어른스러웠고, 참 단단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김태희 아역을 맡으며 '리틀 김태희'라 불렸던 아이가 성장해서 된 '배우 강민아'가 궁금했다.
강민아는 '멀리서 보면 푸른 봄'에서 소빈 역을 맡았다. 소빈은 어렸을 때 소문과 사람들의 손가락질로 인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상처하나 없이 큰 청춘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모두가 이를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강민아는 '소빈'을 자신처럼 단단하게 그려낸다.
"어느 정도 표현할지에 대해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눈 것 같아요. 소빈이가 학교 캠퍼스를 걷다가 사람들이 수군대는 모습을 보고 어렸을 때 놀림당한 기억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고 이런 장면이 있었는데요. 사실 대본에는 '소빈이의 호흡이 가빠온다'라고만 쓰여 있었거든요. 저는 소빈이가 10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계속 아파해오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거라 생각했어요." -
"감독님께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싶냐고 물어보셨고, 제가 리허설 때 다 보여드리지 않고 '일단 해볼게요'하고 집중해서 촬영에 임했어요. 보조 출연자 분들께서 리얼하게 잘 연기해주셔서 그런지,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감독님께 '과해 보이지 않나요?'라고 여쭤봤는데, 감독님이 '이 정도까지 표현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감정이입이 된 것 같아요."
소빈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강민아는 소빈이가 "생각도 깊고, 자신의 모습을 극복해나가려는 강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마냥 조용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웹툰을 보면서 머리 스타일과 옷 스타일을 비슷하게 하려고 했다.
강하지 않았다. 웹툰 원작이었지만 '여신 강림' 속 최수아처럼 톡톡 튀는 것도 없었고, '괴물' 속 강민정처럼 강렬하지도 않았다. 강민아가 연기하는 소빈은 캠퍼스를 걷다가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인물이었다. 강민아는 왜 그런 인물에게 마음이 이끌렸을까. -
"드라마 대본 속에 완벽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어요. 완벽해 보이는 여준(박지훈)도 가정사가 있고, 평범한 대학생 같은 소빈이도 트라우마가 있고요. 공부도 잘하고 성적도 좋은 수현(배인혁)이도 자신의 가난함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고요. 사실 조연 캐릭터도 완벽한 캐릭터가 없거든요. 하나씩 아픔이 있고요. 저는 대본을 읽었을 때, '모든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열심히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부분에서 많은 분이 공감하며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전작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이번에 일상적인 톤을 보여드리는 것도 배우 강민아에게 있어 좋은 방향의 필모그래피라는 생각도 들어서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똑똑한 선택이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시청률은 사실 그렇게 만족한 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엇갈리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평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다. 배우 강민아, 박지훈, 배인혁을 얻었다는 것. 세 사람은 어색하게 만났고, 지금은 누구보다 친해졌다. 강민아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모두 1, 2살 차이라서 학교에서 또래와 어울리는 느낌으로 촬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저희끼리 대본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세 명이 성격도 다르고, 아픔도 다른 캐릭터지만, 세 명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나오니, 저희끼리의 연기 방향성과 톤이 맞으면, 보시는 분들도 일관성있게 봐주시지 않을까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여기에 기숙사 친구로 등장한 권은빈(왕영란 역), 우다비(공미주 역)과도 온종일 함께하는 세트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다 친해진 것 같아요. 심지어 축제 장면 찍는 현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요즘 시국에도 축제를 하네?'라고 물어보시기도 하셨어요.(웃음)"
자신의 나이 또래를 흘러가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공감도 많이 됐다. 강민아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나 빼고 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 다들 한가지씩 문제를 갖고 살고 있고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위로를 많이 얻기도 했어요. 준이(박지훈) 시점, 수현이(배인혁) 시점, 소빈이(강민아) 시점으로 보면서 다들 자신만의 삶을 열심히 버티면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이 저희 드라마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 중 하나도 완벽한 캐릭터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픔을 가진 캐릭터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나가고 있다는 부분에 공감을 해주셔서 좋아해 주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로서 살아온 지 약 13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 손을 잡고 촬영장에 갔던 꼬마 아이가 커서, 이제는 자신의 아역을 현장에서 마주하는 때가 왔다. 묘했다. 소빈의 아역배우(오아린)이 성인이 된 소빈을 안아주는 그 장면은 강민아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했다.
"저도 누군가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했잖아요. 그때는 회사도 없어서 엄마랑 둘이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일을 했거든요. 아린 씨도 엄마랑 같이 현장에 왔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나고, 또 연기를 너무 잘해줘서 마주 보는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내 아역이 오는 날이 되었구나, 그동안 열심히 했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아린 씨도 대단한 게 벌써 데뷔 7년 차라고 하시더라고요.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했는데요.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처음 보는 친구였는데도 애정이 가고, 참 그날은 복잡 미묘한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디션을 보고,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 작품을 해도, 다음 작품을 언제 하게 될지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디션에 떨어질 때마다 "인간 강민아"의 가치까지 정해지는 것 같았다.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달리했다.
"떨어진 작품은 제가 아닌 다른 이미지가 필요하셔서 그렇게 된 결정이었고, 제가 붙은 작품도 제가 대단해서 뽑힌 게 아니라, 그냥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해서 그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우울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 없어졌거든요. 이번에 세 작품에 참여하게 됐지만, 그냥 원래부터 운명적으로 제 작품이라 하게 된 거라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첫 주연을 맡으면서 들뜨거나 신나는 마음도 들었는데요. 그래서 스스로 다독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정말 궁금한데 '저를 왜 캐스팅하셨어요?'라는 질문을 꾹 참았어요. 저의 어떤 부분이 좋아서 뽑았다고 말씀해주시면 기분은 좋지만, 반대로 '그럼 이 부분은 별로인가?'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더라고요." -
영화 '박화영'은 배우 강민아의 터닝포인트였다. 영화 자체가 파격적이기도 했고, 스무 살, 성인이 된 강민아가 처음 한 작품이었다. 현장에는 연극배우, 독립영화 배우들이 있었다. 그때까지 강민아는 누군가의 아역, 누군가의 딸, 혹은 누군가의 조카로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박화영'에서는 달랐다. '리틀 김태희'가 '박화영' 속 여왕 은미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만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 풀어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감독님께도 많이 여쭤봤어요. '나만 연기 톤이 다른 것 같아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그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요. 은미정으로 감정의 끝까지 가는 장면을 한 번 연기하고 나니까, 다음 대본을 받은 다음부터는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20살 겨울에 시작해 21살까지 임한 작품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생각도 많이 바뀌고요."
이제 25살이 됐다. 그리고 드라마 '여신강림', '괴물', '멀리서 보면 푸른 봄'까지 세 편의 작품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특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그의 첫 주연작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남은 2021년, 배우 강민아의 계획은 어떨까. 믿음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상반기 동안 총 3편의 드라마를 찍었는데요. 제가 아직 오래 쉴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일할 시기라고 생각해서요. 이번 해에는 꽉 채워서 열심히 연기하고 싶어요. 남은 2021년도 많은 시청자분들과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