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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웅’ 카이스트...핵심은 서울, 대전은 껍데기?

기사입력 2021.07.23 17:17
  •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지능(AI) 대학원이 서울로의 완전 이전 대신 대전 본원과 서울 분원 체제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대전 본부엔 ‘교육기능’을 서울 분원엔 ‘산업계 협업’을 중심 전략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KAIST는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실상 AI대학원을 서울로 이전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 이전 후 궁극적으로 AI대학원을 단과대 수준의 인공지능대학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의 중심에는 신성철 전 총장과 정송 AI대학원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식을 접한 대전 지역 사회와 학계는 시끄러워졌다. 오랜 기간 대전에 뿌리를 내려온 KAIST의 전도유망한 신생 학과인 AI 대학원이 서울로 옮긴다는 것은 충격파가 대단히 컸었던 것이다. KAIST 전산학부, 타과 교수들 뿐만 아니라 김진형 교수를 비롯한 카이스트 출신의 학자들이 AI대학원의 이기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30년간 대전에서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고자 수고했던 많은 선배교수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이자, 그 동안 KAIST를 키워주신 대전시민을 배신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균형발전 정책에 반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 최근 KAIST는 AI대학원 이전 문제를 재논의했으며, 현재 이원체계로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이광형 총장과 김보원 대외부총장이 새로 선임되면서 학내 기류가 변했다. 새 지도부는 지역간 접점과 학내 소통을 통해 서울이전을 백지화하고 대전과 서울 이원체계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본원에 AI대학원 본부를 두고 AI와 타 전공 간 융합을, 서울에선 산·학 협력으로 인재양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육기능만 남게 될 대전의 지역 AI산업 발전에 대한 전략은 부재하고, 권역별로 AI대학원을 지정한 취지와도 맞지 않게 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AI는 바이오 및 의료, 반도체, 국방, 보안, 도시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범용기술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이뤄지는 산∙학 협력과 인재양성이 대전 본원보다 더욱 핵심이 될 것으로 AI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상하고 있다. KAIST AI대학원이 서울에도 있는 것이 교원 확보에 더 유리하니까 전략적 차원에서 투 트랙 체제를 고안한 것 같은데, 정작 거점인 대전은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서울로 이동해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면, 이 상황을 주시하는 학계 및 산업계의 관련자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대전과 서울의 이원체계에 대하여 김진형 KAIST 명예 교수는 “컴퓨팅 쪽의 혁신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AI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분야가 모여서 같이 연구해야 하는 것인데, AI를 좁게 해석하여 따로 떨어져서 학과를 운영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변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 국내 AI대학원 분포/자료출처=인공지능대학원협의회
    ▲ 국내 AI대학원 분포/자료출처=인공지능대학원협의회

    KAIST AI대학원의 서울 진출은 '국가균형발전'을 역행한다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여전하다. 2019년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하는 인구의 80%는 청년층이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이주한 것이다. 수도권 지역에 인구 자본이 집중되는 수도권 블랙홀 현상은 부동산 문제와 저출산 문제를 불러오는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큰 격차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걸림돌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 까지 행정수도 이전과 전국 혁신도시로 공공기관 지역이전 정책이 추진됐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 5월 지방 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이처럼 정부가 지자체가 국토균형발전을 목표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KAIST AI대학원의 서울 진출은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산실인 KAIST가 정부와 지역,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기적인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KAIST AI대학원은 “현재는 AI대학원은 학과 운영에 집중하고 있으며, 서울 진출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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