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누구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마인' 속 메이드 '김유연' 역의 정이서가 그랬다. 가련한 눈빛에 몽환적인 아우라가 인상 깊은 배우였다.
'마인'에서 처음 눈에 띄었나 싶었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피자가게 사장님으로 등장, 세계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그다. 김유연은 '기생충' 이후 술술 풀리는 중이다. 드라마 '보이스3', 구미호뎐',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줬고, 이번엔 '마인'을 만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줬다. 기세를 몰아 이미 촬영을 마친 차기작도 두 개나 있다.
'마인' 속 정이서가 연기한 김유연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재벌가 메이드로 들어간 인물이다.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유치원 교사도 포기했다. 메이드로 들어간 곳은 국내 1위 재벌가 효원.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메이드였지만, 김유연은 할 말을 할 줄 아는 당찬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쩐지 외톨이 같아 보이는 효원가 손자 '수혁'(차학연)과 사랑을 키운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정이서와 '마인' 종영 후 서울 강남구 논현로에 위치한 민트스튜디오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마인' 스틸 컷 / 사진: tvN 제공
종영 소감을 묻자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한 김유연은 "4개월 반 정도 촬영을 하다 보니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마지막 방송 보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섭섭하고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마지막회에서 김유연은 당당하게 효원가에 입성했다. 메이드로 일하던 효원가에 작은 사모님으로 들어오게 된 것. 김유연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듯, 한순간에 바뀌는 애티튜드로 기품을 자랑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유연이의 마인은 수혁이었기 때문에, 작은 사모님이 됐고, 또 다른 메이드가 수혁이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냈을 때 무의식적으로 유연이는 수혁을 지키려고 했던 거죠"
극 초반엔 재벌가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이라는 콘셉트로, 현대판 신데렐라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식상하기도 하거니와 시대적으로 올드한 소재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김유연은 단순한 신데렐라가 아니었다. 늘 순응하며 살았던 수혁이 당찬 유연을 만나 사랑하고, 이를 통해 한층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삶의 동력이 되어준 거다.
"감독님이랑 작가님께서 기존의 캔디 역할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당당하고 당차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불쌍해 보이거나 처연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죠"
'마인'을 이끄는 주요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수혁-유연 커플에 대한 호감도 상승했다. 효원가 회장 자리를 둔 집안싸움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동안, 수혁과 유연의 로맨스가 단비처럼 다가왔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작품에 로맨스 서사를 더한 차학연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차학연 배우와는 촬영 전에 감독님과 셋이 그룹 리딩을 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누고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었어요. 서로 의지가 많이 됐죠. 구체적으로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잡자 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키스신에서는 둘 다 아름답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됐죠. 밤 2시에 촬영을 시작해서 해뜨기 전까지는 무조건 찍어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림은 잘 나왔으면 좋겠고, 계속 맞춰보고 합을 여러 번 맞췄던 것 같아요. 게다가 물가여서 개구리 소리 때문에 NG도 꽤나 나왔죠. 촬영 감독님도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이서는 이번 작품이 배움의 시간과도 같았을 터다. 대선배 박원숙과의 신도 있었고, 김서형, 이보영 등 믿고 보는 배우들과도 호흡을 맞췄다. 특히, 박원숙과의 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자를 유혹하는 메이드가 불만이었던 왕사모(박원숙)가 메이드 유연을 때리는 신도 있었다.
"저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 게 선생님께서 워낙 노하우가 있으시더라고요. 아파 보이지만 안 아프게 때리는 방법으로 때려주셨어요. 뺨을 맞으면 아팠을 텐데, 머리를 밀듯이 해주셔서 서로 합을 많이 맞추면서 했죠.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로맨스부터 감정신, 심지어 맞는 신까지 소화했던 정이서는 더 많은 작품에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전했다.
"'보이스3'에서 잠깐 나오긴 했지만, 장르물도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또, 제가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그런 현실적인 연애물도 다시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시작 단계이지만, 정이서는 더 큰 꿈을 갖고 있었다. 분야를 망라한 예술 크루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들어온 후, 영화 '각설탕'을 보고 배우의 힘을 느꼈다던 정이서는 "원래 미술을 했었는데, 마음속에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라며 "커가면서 미술이던 연기던 다 연결이 된다는 걸 알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재밌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바람을 전했다.
벌써부터 차기작이 줄을 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출연하더니, 이번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에도 참여했다.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OTT 서비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액션까지 선보인다고 하니 정이서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볼 만하다.
'마인'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모두 촬영을 마쳤다는 정이서는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갖게 됐다. "요즘 집에서 아주 여유롭게 배짱이처럼 살고 있어요. 올해는 계속 쉬지를 못했거든요. 집에서 노래도 듣고, 영화도 보면서 지내고 있죠. 집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머리 아파하는 스타일이라 카페라도 가서 멍을 때리거나 해요.(웃음) 집에 혼자 있을 때 말고는 친구들이랑 전시도 보러 다니고 그런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