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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로 시대를, 흑백으로 색을 보게하는…'자산어보'

기사입력 2021.03.20.00:01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시대를 아파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 학연에게 쓴 글에 담긴 문구다. 이준익 감독은 시대의 아픔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인 '시'에 담아낸 이들에 주목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가 배우 강하늘의 목소리를 타고 그 시대의 아픔을 들려줬다면,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용의 시는 배우 류승룡과 설경구의 목소리를 타고, 그 시대의 아픔을 관객에게 전한다. 이준익 감독은 자연과, 음성과, 그리고 시를 장인의 면모로 스크린에 옮겨냈다.

    정약전(설경구), 정약종(최원영), 정약용(류승룡)은 형제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유교사회에 위협이 되는 사학(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정약종은 순교했고,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정약전은 흑산도에서도 가거댁(이정은)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뭍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던 홍어 회부터 다양한 해산물을 맛보게 된 것도 가거댁의 손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청년 창대(변요한)을 만나게 된다. 바다의 생물에 대한 지식은 높지만, 글에 대한 지식은 낮은 창대는 정약전과 거래를 하게 된다. 정약전은 글을 가르치고, 창대는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이를 떠나, 서로의 스승이 되고, 벗이 된다.

    영화 '자산어보'에 담긴 이야기다. 이는 '자산어보'의 서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라는 글로 시작한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집필한 그림 없이 세밀한 해설로 수산 생물의 특징을 서술한 책이다. 물고기와 해양 생물의 맛을 기록하고 간단한 요리법까지 덧붙여 해양자원의 이용가치는 물론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다.

    시작부터 알 수 있듯 '자산어보'에는 사실과 허구가 공존한다. 실존 인물인 정약전과 정약용의 이야기는 역사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1801년(순조 1)에 일어난 천주교 신자를 박해 사건인 '신유박해'도 역사에 근거해 담겼다. 또한, 극 중 등장하는 정약전의 저서 '표해시말', '송정사의' 역시 실존하는 책이다.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하지만, 창대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 속에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정약전이 집필한 '자산어보'에 그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그 언급을 토대로 창대의 이야기는 모두 창작됐다. 그의 가족사, 아내가 된 소꿉친구 복례(민도희) 역시 허구의 이야기다. 허구지만, 상상이 가능한 범위 내의 허구도 있다. 정약전과 창대가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자산어보'가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배우 설경구와 변요한은 이를 촘촘한 감정으로 담아낸다. 실제 말투가 저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은 섬 사람의 옷을 자신의 옷처럼 입었다. 설경구는 넓은 바다와 이를 둘러싼 산처럼 무엇이든 품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모습으로 '자산어보'에 임한다. 변요한은 당장이라도 물질을 하거나 불질을 할 것만같은 패기를 보여준다. 실제로도 촬영을 위해 섬에 1달 넘게 머무르며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줬고 "벗"이 되어줬던 두 사람이다.

    무엇보다 '자산어보'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시다. 이준익 감독은 이제는 '시를 스크린에 옮겨내는 장인'의 면모를 띄는 듯하다.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가 마음을 울렸듯, '자산어보'에서 정약용의 시가 마음을 울린다. 류승룡과 설경구의 목소리로,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연과 시대를 품어낸 그 언어들은 무엇보다 관객에게 커다란 울림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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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이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흑산도는 '흑산'의 색이 아닌 '자산'으로 남는다. 스크린 속에서 관객은 흑백을 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예쁜 색의 하늘과 바다와 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약전에게 '자산'이 색이 되었듯 영화가 마친 후 흑백필름 역시 '자산'의 색으로 마음에 남겨질 것.

    한편, '자산어보'는 오는 3월 3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상영시간 126분.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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