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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염혜란'을 만든 경이로운 경험

기사입력 2021.02.14.00:01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배우 염혜란을 마주할 때마다 참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에서 마주했을 때는 늘 쿨할 것만 같은 멋진 언니였는데, 영화 '빛과 철'에서 마주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실제 '염혜란'이라는 사람을 짐작할 수 없을 것 만같은 경이로운 느낌, 배우 염혜란은 이를 입밖으로 꺼내기에도 너무나 소중했던 한 경이로운 경험으로 만들어갔다.

    염혜란에게 처음으로 연극, TV도 아닌, 영화에서 연기상을 안겨준 영화 '빛과 철'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빛과 철'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희주(김시은)와 남편이 의식불명 상태가 된 영남(염혜란)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나의 사건, 말할 수 없는 당사자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그 속에서 희주는 진실을 알아내려 하고, 영남은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염혜란은 세월을 '버텨내고 있는듯한' 영남 역을 맡았다. 딸 은영(박지후)을 키우며 일어나지 않는 남편의 간병을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다. 염혜란은 "모든 것을 갈무리 하지 않고, 덮고 살아온 여자"라고 영남을 설명한다.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봄이 오기 전에 얼음 밑에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시간을 계속 버텨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걸 좀 표현하고 싶었어요. 외면으로 보기에는 단단한 얼음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깊은 물속으로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 그걸 생각했습니다. 영남의 상처들은 방금 생긴 상처가 아니고, 오랜 세월이 베어있는 상처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일 없어보이는 인물 같았어요. 그것에 집중해서 연기했습니다."

    '빛과 철'은 오묘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교통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를 따라가다보면, 그것보다 삶을 마주하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 수록 강렬한 것들이 더해지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선택"했던 작품이다.

    "감독님께서 대사를 하지 않고 있을 때의 서늘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고 하시면서 염혜란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서늘함, 많이 응축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 그런 영남이 되게 매력적이었죠. 하고 싶었어요. 어떤 배우가 봐도 영남 역할은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한 작품에서 어떤 때는 섬세하고, 또 어떤 때는 폭발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변화를 가진 인물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거든요. 욕심이 났었죠. 힘들고 어렵지만, 감정의 깊이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매력적이겠다, 그렇게 느꼈어요. 서늘 한 느낌."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빛과 철'을 연출한 배종대 감독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사전에 배우들이 만나 리딩을 하고, 현장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연습해보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래서 탈의실에서 영남과 희주가 만날 때, 배우 염혜란과 배우 김시은도 처음 만나게 됐다.

    "그날 첫 촬영이기 때문에 너무 긴장이 됐었어요. 모든 작품에서 첫 촬영이 가장 어렵거든요. 너무 긴장한 상태라서 마주했는데, 김시은 배우가 '빛과 철'의 철처럼 너무 단단하게 앉아있었어요. 독기를 품고. 그 장면 찍고, '김시은이 염혜란을 싫어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정도였어요. 날카로운 철처럼. 그때는 몰랐어요. 그냥 '오케이'가 나와서 다행이다. 했는데, 보이지 않는 칼들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니까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쭉 진행하셨겠죠."

    "사실 연극을 오래해서 그런 걸 안 좋아했어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연기하는 느낌이요. 차라리 그 장면에 대해서 원하는 바나, 목적을 많이 이야기하고, 그것을 통해 나오는 호흡도 훌륭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 감독님께서 사전에 의향을 물어보셨을 때 괜찮다고 했어요. 한편으로는 기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처음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배우와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런 부분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지를 열어놓았던 것 같아요."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배종대 감독은 염혜란 배우를 "몰입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염혜란은 쑥쓰러운 듯 "과찬이십니다. 홍보를 위해 이런 이야기까지 하셔야했나요"라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몰입을 위한 자신의 비법을 조심스레 말한다.

    "제가 배우 줄리엣 비노쉬를 좋아하는데요. 그 분께서 오래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나무토막을 보면서도 사랑고백을 해야하는게 배우라는 직업이다.' 너무 멋진 말이죠. '그렇지, 그 훈련이지' 생각했어요. 연극을 오래하다가 매체로 오니, 상대 배우를 보지 않고 연기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종종 카메라에 담기는 시선처리를 위해 '카메라 옆을 보고 얘기해주세요'라는 주문을 받기도 해요. 카메라에 담기는 연기가 중요하다보니 그런게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할 때, 나문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저에게 말씀해주신 비법인데요. '그런 훈련을 많이 해. 카메라를 사람으로 보는 훈련.' 이런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감사했어요. 저만 갖고 있는 비법인데요, 매체연기를 할수록 사람을 보지 않고 하는 연기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하는 숙제인 것 같아요."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염혜란은 최근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월에는 영화 '새해전야', '아이', 그리고 '빛과 철'까지 연이어 개봉하며 관객과 만날 준비 중이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그 속의 모든 캐릭터가 다르다. '빛과 철'에서 감정을 얼음 속에 가둬둔 서늘함을 보여주었다면, '새해전야'와 '아이'에서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의 작품마다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배우 염혜란이 캐릭터를 준비하는 자세가 궁금해진 이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염혜란의 경이로운 경험을 듣게 됐다.

    "작품을 선택할 때,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나'라는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연극할 때 이런 강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제 옆에 와서 저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긴 했는데요. 그 이후로, 제가 맡은 캐릭터가 작품 속 인물,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 어디에서 삶을 살고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내 연기를 볼 때 '다 거짓말이 아니구나, 내 모습을 어딘가 닮아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어디에선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저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이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경험은 오래 전 연극할 때였어요. 연극 '차력사와 아코디언'이라는 작품인데요. 그때 제가 맡은 인물이 차력 보조하는 써니 역할이었거든요. 그 역할을 할 때, '써니'가 제 옆에 앉아있는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소중한 경험이라 훅 이야기해버리기 그렇긴 한데요. 그때 좀 '아차' 싶고, 놀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빛과 철' 속 영남이 나를 보고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할지도 몰라요. '나 그렇게 살지 않았어, 왜 왜곡 시키는거야' 이렇게요.(웃음)"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 사진 : 찬란 제공
    그렇게 염혜란은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영화 '빛과 철'을 비롯해 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남을 앞둔 염혜란의 기분은 어떨까.

    "개봉하면서도 아직 제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확인하는건 너무 부담스럽고 걱정되고 두렵더라고요. 세 작품이 동시 개봉하는 일이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너무 빨리 들통나는건 아닐까? 많이 노출될수록 실망이 많아질텐데? 두려움이 크죠. 가끔 한번씩 나오면 어떨까 싶죠.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시나리오를 보면, 또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있고, 그러네요."

    염혜란은 2021년에도 열일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믿고보는 배우'의 열일 계획은 언제 들어도 반가운 소식이다.

    "'경이로운 소문' 시즌2는 확정은 난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시기는 조율을 해야할 것 같아요. 다 겹쳐서요. 구체적인 얘기는 대본이 나와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준비하는 동안 서로 싸워서 시즌2는 무산될수도 있어요. 농담입니다~(웃음) 차기작으로 JTBC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준비하고있는데요. 경찰로 나와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기대는 마시고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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