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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통해 치유 받기도 한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도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사람으로 인해 치유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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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병원에서 부인과 진료를 하는 의사 ‘알도’에게 한 소녀가 찾아온다. 얼마 전 사춘기 징후가 시작된 지 2년이 다 되도록 성장하지 못했다며 진료를 받았던 ‘클라라’였다.
다짜고짜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소녀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알도는 클라라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전쟁 중 끌려가 실종된 부모로 인해 반항적으로 변한 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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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는 총명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클라라와 점차 가까워지며, 점차 삶의 기쁨을 찾아간다. 클라라 역시 알도와의 만남을 통해 일흔 살 노파와 같은 냉소를 지우고 또래의 웃음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위태롭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중년 남자와 어린 소녀의 관계에 사람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때문이다. 스탈린 치하의 경직된 사회에서 풍기문란으로 찍히기라도 하면, 소리소문없이 어디론가 끌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로를 보듬어주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알도와 클라라. 과연 이들은 어렵게 찾은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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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F.바르코니 주자의 ‘남자들의 세계의 여자들을 위한 소설’이 원작인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에 휘말려 상처받은 중년 남자와 어린 소녀가 서로를 보듬으며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아빠와 같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무작정 알도를 찾아가 응석을 부리는 클라라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이들이 겪은 비극을 더 깊게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드러나는 알도의 사연-홀로코스트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았던 것-은 클라라에게 유독 우유부단했던 알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두 사람을 더욱더 애틋한 시선으로 보게 한다.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공통점을 가진 알도와 클라라는 누구보다 서로를 깊이 이해한다. 둘 사이의 감정이 정말 순수함뿐이었다고 확언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서로를 통해 치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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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헝가리 필름 아카데미상 4개 부분과 헝가리 영화비평가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헝가리 영화계의 찬사를 받은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알도와 클라라가 서로를 의지하며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영화는 2월 10일 개봉이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