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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정은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다인 / 사진 : 프레인TPC 제공
배우 유다인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깊은 순간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툭 던져놓을 때였다. 유다인은 "저는 뭔가 깊이 들어가는 걸 잘하는 것 같은데"라며 자신과 대조되는 지점에 서서 영화 전체를 보면서 아이디어가 많은 배우 오정세를 칭찬했다. 영화 '혜화,동'부터 드라마 '아홉수소년', '출사표' 등 커다란 눈망울 속에 다른 결의 감정을 깊숙하게도 넣어 대중에게 전해주던 유다인이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제목과 같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영화 속 정은(유다인)은 자신을 해고하려는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온몸으로 맞선다. 그 속에는 사무직이었던 정은이 본사에서 하청업체로 파견돼 결국 송전탑에 올라 전기 공사에 참여하는 일까지 담겨 있다.
배우 유다인은 정은에게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을 담고 싶었다. 우연히 보게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마주한 눈빛은 유다인의 가슴에 그만큼 강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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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진진 제공
유다인은 정은에게 "절박함"을 먼저 보았다. "시나리오를 통해서 봤을 때, 정은이 초반에 차갑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저에게는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영향이 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차가움보다 절박함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느껴졌고요. 시나리오만 봤다면 분석하듯 연기했을 거예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영향이 가장 컸어요."
정은을 표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높은 송전탑에 올라야 하기도 했고,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있어야 하기도 했다. 정은은 고소공포증 같이 특정 대상에 공포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자신의 공포심까지 이겨내야했다. 유다인은 "대사로 표현되거나, 클로즈업 장면이 많아서요. 표현이 너무 과해지면 안 되니까 최대한 절제하면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속에도 다큐멘터리에서 마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KTX 해고 노동자들의 동료 분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분도 계셨어요. 정은의 동료 중에도 그런 인물이 있고요. 또 정은의 대사처럼 '일을 줘야 일을 하죠'라는 말처럼 손발이 묶여서 일을 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내몰린 것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답답함이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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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 사진 : 영화사 진진 제공
고된 촬영이었다. 유다인의 말을 빌리면 "그냥 한달 내내 아픈 상태"였다.
"엔딩 장면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장면이 있는데요. 카메라 무빙이 있어서 꽤 오랜 시간 매달려 있어야 했거든요. 그때 허리를 삐끗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고요. 촬영 마지막 날에는 모두 식중독에 걸려서 저를 포함해서 응급실에도 갔고, 밤샘 촬영하고 서울로 일찍 올라가야 했는데, 숙소에서 반나절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아픈 상태였던 것 같아요."
정은에게 말을 걸어주는 막내(오정세)는 송전탑을 "우리 딸들"로 생각하고 오른다고 했다. 유다인은 어떤 생각으로 올랐을까.
"마찮가지겠죠. 그 인물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올라간 것처럼,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올라갈 것 같아요. 다 포기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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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정은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다인 / 사진 : 프레인TPC 제공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시선이 가게됐다.
"뉴스를 보면서도 시선이 가게 되죠. 돌아가신 노동자 분의 어머님께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 하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내 아들을 다시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아들 죽지 않게, 다치지 않게 법을 만들어달라는 건데'라면서 울먹이셨거든요. 아마 제가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은을 연기한 유다인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정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영화 제목같은 이야기일 것 같아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너 소신대로 살아. 아무리 너를 무시해도, 너 존재가 조금이라도 떨어지진 않아'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것 같아요. 저에게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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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정은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다인 / 사진 : 프레인TPC 제공
영화 '혜화,동'(2010)에서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유독 큰 눈망울에는 때로는 설렘이, 때로는 절박함이 담겼었다. 과거에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달라졌다.
"어떤 것에 끌려서 작품을 하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요. 대부분 너무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것은 사람이나 인물에게 매료됐을 때였던 것 같아요. '혜화,동'도 그랬어요. 시나리오의 배경이 된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유기견을 구조하러 다니는 여자 분을 만나게 됐어요. 그 분이 '아이들이 저를 보면 도망다니는데, 왜 제 마음을 몰라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표현해보고 싶다고 느꼈거든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10년 정도 연기를 해오면서, 저에게도 만족스럽고, 보시는 분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던 캐릭터의 성격이나 작품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연기적인 표현이 많은 배우는 아니잖아요. 디테일한 표현을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의 대본을 보면 '내가 도움이 되겠다, 내가 잘 쓰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분명 있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쪽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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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정은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유다인 / 사진 : 프레인TPC 제공
예전에는 작품에도, 자신에게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달라졌다. 조금 더 힘을 빼고 지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라는 작품도 "우리가 같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다였던 것 같아요.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계기가 있었을까.
"연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하고, 몸에 힘을주고 뭔가를 열심히하고. 이런 것들이 나중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특히 작품을 할 때나, 무언가를 할 때, 의미를 두려고하지 않아요."
유다인은 "길게 보는 배우"가 되려고 한다.
"당장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아요. 길게 보려고 해요. 그러려면 힘 빼고 가야겠죠?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작품 속에서나 현장에서 선생님들을 뵙게 되면 정말 좋아보이거든요. '나도 저렇게 할 수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존경심이 들어요. 선생님들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냥 힘 빼고 해.' 욕심 부리지 않고, 그냥 천천히, 남들 곁눈질 하지 않고, 그렇게 제 호흡대로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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