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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가 '짠내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영화 '차인표'를 통해서다. '차인표'는 과거의 인기에 심취해있는 차인표가 건물 붕괴 사고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도 오로지 이미지를 구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차인표의 모습이 측은한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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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사는 매니저 김아람(조달환)이 있다. 아람은 차인표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헌신적인 매니저다. 하지만 차인표도 알고 있다. 이제 자신은 투자가 되는 배우가 아니라는 걸. 한물간 배우라는 걸. 그래도 차인표는 젠틀맨이자 톱스타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산다. 매일 운동하고 닭가슴살 먹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작품을 위해 자신을 가꾼다. 친한 배우들이 연기 4대천왕으로 불릴 때, 자기 자리는 없는지 기웃거리고, 이미 하차를 통보받은 작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 액운을 제대로 받는 날이 온다. 반려견의 대변을 잔뜩 움켜쥔 그날이다. 대박이 날 줄 알았는데, 상황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간다. 이런 상황에도 차인표는 이미지와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
실제 차인표는 선행의 아이콘이자 젠틀맨 이미지를 가졌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입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실재와 허구가 섞인 '오묘한 차인표'를 연기해야 했다. 이미 5년 전에 받았던 대본이지만 쉽게 출연을 약속하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과 허구 속 차인표의 괴리감 때문이었을 터다. 차인표는 작품을 허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 "대본이 현실을 잘 본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극 중 차인표를 통해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다.
"이미지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 공감이 많이 됐어요. 실제 제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대중들이 저에게 부여해준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임무라고 생각하다 보니, 그게 족쇄가 돼서 오랫동안 크게 변신하지 못하도록 생각에 제한을 두고 통제한 건 아닌가 싶었어요" -
타이틀롤로도 모자라 자기 이름 그 자체인 영화다. 아무리 대배우라고 해도 이런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제껏 보여준 차인표의 이미지에 코미디를 더해 재포장한 작품이었다. '웃픈'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부담감이 많이 있었고요. 코미디 영화인데 제 이름을 희화화하는 거라. 코미디가 아니라 위인전이라고 해도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코미디라 더 있었죠. 혹시 제가 연안 차씨 46대손인데 가문에 누를 끼칠 수도 있고, 살아갈 후손들이 봤을 때 희화화하는 영화로 비치면 어쩌나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좋은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뿌듯함보다는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이게 위인전이 아니고 코미디 영화를 만들다 보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는 스릴은 분명히 있었죠. 우리의 도전이 너무 희화화되고 끝나면 어쩌나 외면받으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도 물론 있었어요.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관심 가져주시니까, 어느 정도는 우리가 의도한 대로 성취가 된 것 같아서 기쁘게 생각해요" -
'차인표'는 1월 1일 공개된 후 꾸준히 넷플릭스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 시청자들도 만나고 있다. 오랜만의 출연작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 기쁠 법도 했지만, 차인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코로나19로 많은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일단 기뻐하기에 앞서서 영화들 만들어 놓고 개봉을 못 하시는 분들, 제 친한 지인들 감독들도 많이 있어요. 일년 내내 기다렸는데 못하는 분들, 눈물을 머금고 개봉했는데 관객들이 못 와서 접는 분들 앞에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제가 넷플릭스에서 제가 나온 거 1등 했다고 기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저 혼자 1등 하면 뭐 하겠어요 같이 살아야죠" -
배우로만 2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는 틈틈히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며 활동 스펙트럼을 넓혔다. 지금도 친한 감독, 작가들과 함께 두 가지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그는 어떤 창작자가 되고 싶은지 궁금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품은 가족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오락성 있게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죠"
"제가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었고, 제가 주어진 역할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메시지도 전하고 드라마도 만들고 하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두 번째로는 업계에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
차인표는 극 중 '차인표'와 달리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확인했다. 여전히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지, 스스로가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람인지를 평가했다. 그에게 현장은 '시험의 장'이었다.
"공동 작업을 하는 현장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같이 공존할 수 있느냐 같이 일할 수 있느냐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게 촬영 현장 같아요. 이제는 나이를 떠나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모인 건데, 우리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아직도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람인지, 차인표는 같이 일할만해 하는 사람인지 계속 확인하는 곳이죠" -
차인표는 '차인표'를 통해 제대로 된 코미디를 보여줬다. 이미지는 물론이거니와 몸도 사리지 않았다. 그는 코미디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주성치처럼 오랫동안, 넓은 세대의 사랑을 받는 코미디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희생해 웃음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런 차인표의 애정이 듬뿍 담긴 영화 '차인표'는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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