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일반

[칼럼] 당신의 아이는 건강하게 먹고 있습니까

  • 소아과전문의 오상민 원장(참소아청소년과의원)
기사입력 2020.11.19
  • 소아과전문의 오상민 원장
    ▲ 소아과전문의 오상민 원장

    자녀의 더딘 성장만큼이나 걱정되는 것이 이른 성장이다. 특히 유치원, 초등학생 딸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아이의 키 성장이 빠르면 빠른대로, 느리면 느린대로 한번쯤 의심하고 걱정해 보았을,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낯설었던 그 이름. 바로 ‘성조숙증’.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성조숙증이 의심되어 검사하고 진단받아 치료하고 있다. 여아인 경우 8세 미만에서, 남아인 경우 9세 미만에서 사춘기 초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여아는 가슴발달, 남아는 고환크기의 증가가 첫 증상이다. 최근 5년 사이에 성조숙증으로 진단받은 아이들은 5배나 늘었다.

    가장 주된 원인은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한 비만과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 환경호르몬(EDCs, 내분비교란물질)은 산업활동 등 인위적인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물질로, 호르몬의 주요 기능에 장애를 가져오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을 말한다. 이는 몸에 흡수되어 본래 호르몬 기능을 교란시키거나 방해하게 된다.

    BPA-free 젖병만을 고집해 썼던 우리 아이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 플라스틱 칫솔로 치약을 묻혀양치질을 하고, 비누로 세수를 한다. 핸드폰도 만질 것이며, 놀이매트에서 구르고, 물티슈로 얼굴을 닦을 수도 있다. 플라스틱 컵에 물도 마실 것이고, 가끔은 귀찮으니 PET병에 담긴 물을 학교에 보내기도 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외출 시 마스크는 필수, 그 마저도 며칠 쓰지못하고 쓰레기통 행이다. 서점에서 책도 사고, 엄마를 따라 간 슈퍼에서 영수증을 대신 받기도 할 것이며, 과자봉지, 팩주스, 빨대를 야무지게 꽂은 요쿠르트 등을 운좋게 얻어낼 수도 있을 터다.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행동의 끝에는 환경호르몬이 있다. 칫솔, 치약, 비누, 핸드폰, 컵, PET병, 마스크, 과자봉지, 빨대, 주스 용기. 점심에 구워 준 생선 한 마리에는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된 아주 많은 양의 환경호르몬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아이가 마시는 일상의 공기마저도. 안타깝지만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항상 의지와 상관없이 노출되는 부분이고, 직접적인 노출 없이도 영향을 받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사용되어지는 다양한 플라스틱 물건들이 우리 아이 몸 속의 유해물질 농도를 높이고 있다.

    플라스틱은 연간 생산량이 4억톤에 달하며, 매년 자연으로 퍼지는 5mm 미만 작은 입자의 미세 플라스틱은 3천만톤 이상, 해양 생태계로 유입되는 양은 수백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플라스틱의 재활용률도 턱없이 낮은 암담한 상황이다.

    플라스틱에서 검출되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는 비스페놀A와 프탈레이트가 있는데, 납과 수은 등의 유해물질은 성인이 청소년보다 두배가량 높은 농도를 보이는 반면, 놀랍게도 이 비스페놀A와 프탈레이트는 연령이 낮을수록 더 높게 나타난다. 단위 체중 당 음식섭취량, 호흡률이 성인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기관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태아기 유아기에 환경호르몬에 노출이 되면 더욱 치명적이다. 이는 내분비를 교란시켜 정상호르몬의 작동을 방해한다. 또한 미세플라스틱은 단백질과 DNA까지 손상시킬 수 있다.

    최근 ‘온도 높을수록, 많이 흔들수록’ 플라스틱 배출이 증가하여, 아기 젖병을 흔들 때마다 수백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오고, 젖병을 95도 물에 소독하여 70도의 물을 부어 넣었을 때 방출량이 확연히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아이의 먹거리를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 안에 있는 원재료, 공정 중 사용되어지는 물, 제조 설비 및 공장안의 공기, 작업자 및 위생복, 음식 포장재, 조리 온도와 방법, 조리 도구 및 화기, 보관 용기까지. 그 어느 곳에도 경시될 수 있는 환경호르몬은 없다. 실제로 몇몇 기업 및 생활협동조합 등은 이 모든 것에 대해 검수하고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 된다. 플라스틱의 위해성을 인식하는 것이 그 첫 걸음.

    이제 두 번째 걸음부터는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나가고 유해물질에 최소한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대체품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이유식이나 아이 간식 조리 시 플라스틱 용기 대신 전자레인지 전용 유리 용기를 활용하고, 아이 주변의 모든 곳에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나 스테인리스 등 유해물질, 유해 폐기물이 되지 않을 제품을 취하고, 뜨거운 국물이나 갓 조리한 제품을 플라스틱에 담아주는 포장 음식을 자제하는 한편, 먹더라도 다회용 유리 용기를 직접 가져가 담아오는 것을 추천한다.

    코로나19(COVID-19)로 배달과 포장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는 보도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재난보다 어쩌면 더 크고 두려운 재난 상황을 예고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작하자. 지금부터라도. 당장.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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