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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살기 위해 발악하는 모두에게 '내가 죽던 날'이 전하는 위로

기사입력 2020.11.11.20:16
  •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형사물의 옷을 입은 '내가 죽던 날'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작품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 절벽에서 실종된 한 소녀와 이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섬으로 향하는 형사, 이들을 지켜본 무언의 목격자, 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편의 외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동 중 교통사고를 낸 형사 '현수'. 사고로 팔 마비까지 겪은 그는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다.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일이라도 해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직 신청을 하러 가는 길, 오랜만에 제복을 차려입은 현수는 징계위에 회부되기 전 일 하나 처리하라는 선배의 조언에 외딴 섬으로 향한다.
  • 그가 맡은 건은 한 소녀의 자살사건. 실종이 아닌 '사망추정'으로 매듭짓는 것이 현수가 할 일이다. 실종된 소녀 '세진'은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다. 아버지는 사망, 사고만 치는 오빠는 수감된 상태다. 세진은 섬마을에서 신변 보호를 받던 중, 태풍이 닥친 어느 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운데, 현수는 섬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소녀가 사라진 이유를 되짚는다.

    현수는 세진이 머물던 집을 제공한 동네 주민 '순천댁'을 찾아간다. 세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으나 순천댁은 말을 하지 못한다. 불우한 가정사 속 음독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성대를 잃어서다. 서툰 글씨로 현수와 필담을 나누는 순천댁은 세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세진의 사건을 파헤칠수록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현수. 때때로 CCTV를 향해 폭력성을 보이고,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진을 보며 힘들었던 시기 속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점점 세진의 사건에 몰입한 현수는 세진의 모든 행동이 죽기 위함이 아닌 '살기 위함'이었음에 처절히 공감한다.
  • 작품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세진을 간접적으로 알아가는 현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런 현수 역을 맡은 김혜수는 일상이 무너진 사람의 내면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표현한다. 외적인 면까지 완벽하게 현수에 스며들었다. 그는 초췌하다 못해 피폐한 모습으로 세진에게 몰두하는 현수를 섬세한 강약조절 연기로 완성했다.

    전개상 중요도와 분량이 비례하지는 않은 탓에, 이정은이 연기한 '순천댁'은 더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려진다. 농아인을 연기한 그는 섬세한 표정과 외적으로 풍기는 면면으로 사연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다. 순천댁은 그 존재 자체로 작품의 메시지다. 극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순천댁-세진에 얽힌 이야기가 풀리면서 비로소 가치를 드러낸다.

    두 대선배 사이에 선 노정의의 노련미도 눈에 띈다. 노정의가 연기한 '세진'은 아버지의 범죄를 전혀 모르고 있던 순진한 부잣집 딸의 모습에서, 외딴 섬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고독한 순간까지,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다. 박지완 감독의 말처럼 노정의는 웃는 표정과 무표정의 갭이 큰, 특유의 매력을 가졌다. 어떤 때는 가엾다 못해 처연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사건의 중심을 잡았다.
  • '내가 죽던 날'은 삶과 죽음을 다뤘다. 엄밀히 말하면 살고 싶어서 죽음을 생각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절망 속에도 희망은 피어난다는 메시지는 결국 '내'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말이다. 살아야 고통도 희망도 겪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런 접점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또 서로의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이야기 '내가 죽던 날'은 11월 12일 전국 극장가에서 개봉. 러닝타임 1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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