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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배우 정수정이라는 발견, '애비규환'

기사입력 2020.11.08.00:01
  • 그룹 f(x) 멤버 크리스탈이 배우 정수정으로 영화 '애비규환'에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 그룹 f(x) 멤버 크리스탈이 배우 정수정으로 영화 '애비규환'에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과거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9살 소년이 엄마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 영화 '애비규환'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길 위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성장한다는 지점을 빼고, 말이다. 아,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가족, 그 곁을 떠나고 나니 그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러니함이 터프하게 담겼다.

    토일(정수정)은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태어났다. 가정에 소홀했던 친아빠(이해영) 탓에 사진도 죄다 독사진뿐이다. 그 속에서 엄마(장혜진)는 사진을 찍는 역할을 맡았다.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다. 7살 토일의 의견과는 무관했다. 엄마가 현아빠(최덕문)와 재혼할 때에도 그랬다. 토일은 하루아침에 대구의 친구들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22살이 된 토일은 사랑하는 남자, 호훈(신재휘)을 만난다. 호훈은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이다. 미성년자는 아니다. 1년 늦어져 20살이긴 하다. 호훈은 토일을 하늘로 생각한다. 너무 멋진 누나, 대통령이 될만한 누나다. 두 사람은 뜨거운 밤을 보내고, 토일의 뱃속에는 아이가 생긴다. 임신 후 5개월, 토일은 부모님에게 호훈을 소개한다. 결혼 후 5개년 계획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엄마는 "병원가자"는 말을 처음으로 한다. 상처뿐인 고백, 토일은 친아빠를 찾으러 고향 대구로 향한다.

    '애비규환'은 정수정(f(x)의 멤버 크리스탈)과 호훈(신재휘)의 키스신부터 시작한다. 그룹 f(x)(에프엑스)의 멤버 크리스탈에게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5개월 후'라는 자막 이후로 등장하는 임산부의 모습 역시 그렇다. 완벽한 몸매로 무대 위에 섰던 크리스탈의 모습은 '애비규환' 속 배우 정수정에게 찾아볼 수 없다. 배를 손으로 부여잡고 다니고, 의자에 앉을 때는 허리를 붙잡고 앉는 등 임산부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한다.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토일이 모든 서사의 주체가 되어 이끌고 간다. 이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 친아빠를 찾으러 간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친아빠 후보들, 어린 시절 친구, 그리고 배드민턴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호훈의 친구들까지. 사람은 긴밀하게 연결돼 캐릭터의 서사를 뒷받침한다. 영화 '기생충' 장혜진, '암살' 최덕문, '찬실이는 복도많지' 강말금, '비밀의숲2' 이해영 등 믿고보는 배우들이 정수정을 둘러싸고 있다. 구멍없는 연기는 작품 속  인물 한 명, 한 명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느껴지는 질감이 다양하다. 관객마다 이입하게 되는 지점도 모두 다를 것. 아빠가 체질이 아니라 떠나간 친아빠, 사회 선생님이라 똑 부러지지만,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엄마, 사자성어를 일상화해 암호처럼 쓰는 현아빠 부터 서울로 가서 대학생이 된 토일을 바라보는 고향 대구에 남아 튀김집을 하는 친구 복남, 그리고 엄마와 손녀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조상님께 잘못한 내 탓'이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외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토일 뿐만이 아닌, 관객에게까지 말을 건다. "그래도 너의 곁에 가족이 있다고, 있었다"고 말이다.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오글거리게 엄마랑 딸의 포옹 한 번,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나오지 않지만, 영화는 그 흐름과 토일을 지탱하는 서사 속에 그 이야기를 진하게 우려낸다. 현재의 가족은 비록 이혼 후 재혼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선택에 있어서 그 누구도 책임을 덜하지 않았다고. 그렇기에 15년의 세월을 지탱했고, 이들에게 불행의 프레임을 씌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까지 전하면서 말이다.

    최하나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부모님들의 직업을 선생님으로 설정한 것도 자신의 부모님이 '선생님'이었기에 한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재능있는 감독의 재기발랄한 첫 장편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서 첫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 반짝반짝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배우 정수정이 있다. 11월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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