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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치고는 좀 사람같아요'라고 적혀있었다. 배우 고아성의 사진 아래에 적힌 댓글이다. 고아성은 인상깊은 팬의 반응을 묻는 말에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씀드릴 수가 없다며 조심스레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만큼 고아성은 요즘 인스타그램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한 줄 한 줄 이어지는 대중과의 소통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좋은 것을 이야기할 때, 한없이 환해지는 사람, 정말 요정치고 많이 사람 같은 배우 고아성을 만났다.
고아성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자영 역을 맡았다. 오지랖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인물이다. 8년째 말단 직원으로 삼진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의 꿈은 '커리어우먼'인데, 딱 출근길까지다. 회사에서는 고졸 출신의 말단 여직원으로 주 업무는 담배심부름과 커피 타기다. 그러다 회사에서 토익 점수에 따라 대리로 진급해주겠다는 약속에 자영은 같은 처지의 친구 유나(이솜)와 보람(박혜수)와 함께 토익반에 등록한다. "디스 이즈 자영"을 배워가던 시절, 동수 대리(조현철)와 함께 방문한 지방 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폐수 방류를 목격하게 된다. 회사는 이를 묵인하려 하지만, 자영은 고개를 돌릴 수만은 없다. 그리고 그의 곁엔 유나와 보람이 있다.
"자영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옆에는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죠. 그 점을 살리려고 했어요. 자영이는 전화를 받을 때에도, 서류를 찾아줄 때에도, 행동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 생산관리 3부 현장에 들어섰을 때 놀랐어요. 부장, 과장, 대리 책상이 나란히 있고, 고졸 출신 유니폼을 입는 여직원들 책상은 복도에 있는 것처럼 배치돼 있더라고요. '이런 구조구나. 오케이. 이걸 표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말로는 떠오르지 않는데 가슴에 얹히더라고요." -
고아성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굴곡 없이, 흐트러짐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온 배우라는 인식이 있었다. 고아성은 슬럼프가 없었다고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못 하는 편이라, 언제 힘들었다고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는 세상을 그냥 작품에 많이 녹이려고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가슴에 얹히는 자영에게 어떻게 공감했을까, 궁금해진 이유다.
"배우가 직급이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볼링이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들었거든요. 연기도 그런 것 같아요. 정말 한순간의 작은 판단으로 인해 바뀌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어떤 작품에서 잘해도, 다음 작품에서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너무 복잡한 길 같아요. 그래서 그때그때 작품에 맞게 연구를 잘하면서, 작품 속에서 녹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고아성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맡은 자영은 서사를 이끌고 가는 인물이다. 고아성은 "자영이가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진의를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라며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하게 말한다. -
"자영의 개성보다는 사건과 함께 가야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자영이 사건을 끝까지 끌고갈 수있는 원동력은 성격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이타적인 성격도 그렇지만 자영이가 피해 주민들과 직접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요. 도와주는 친구들과 조력자들이 많아서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이 담기기 바란 것 같아요."
고아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의 그였다. 사람은 좋아했지만, 다가가는 것은 항상 어려웠다. 하지만, 자영 역을 맡은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스스로 만든 것 같아요.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도 사실 저로서는 힘든 일이었어요. 그건 이솜, 박혜수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어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거든요. 사람을 많이 좋아한다는 점은 자영과 같아요.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누구나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번 현장에서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에도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
사람으로 에너지를 얻었던 현장이다. 특히 수많은 배우와 함께한 출근길 촬영에서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작품을 위해, 백여명의 사람들이 2020년에 1995년으로 함께 이동했다.
"어떤 상대와 연기하느냐에 따라 제 연기도 많이 달라지거든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아마 자영이가 가장 많은 인물을 만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삼진그룹에서 만나는 사람,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자영이가 많은 사람과 호흡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현장에 같이 연기하는 배우가 많으면, 그 기운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여실히 느껴지거든요. 출근길 촬영 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벅차오르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사실 관객분들이 느껴주셔야 하는데요.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보조출연자까지 한 100명 정도가 함께 거리를 걸었거든요. 그 장면을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는데, 정말 제가 너무 행복해보이는 거예요. 정말 진실된 웃음이 나왔던 것 같아요."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디테일은 고아성에게 힘을 더했다. 이종필 감독은 "리듬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만 있어도 왠지 리듬이 느껴지는 이유다."장면마다 몇 초짜리 장면이라는 것도 다 정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이 대사는 빠른 템포로 쳐달라'며 템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서울대에 가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캠퍼스에 도착해서 연구소에 들어가 교수님을 만나면서 자영이 '나는 작은 사람이구나, 할 수 있는 건 없구나'라는 걸 느끼고 돌아서요.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막 쏟아져 나와요. 학생들을 피해서 가는 자영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이런 호흡은 감독님께서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많이 믿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 마케팅부 부장 반은경(배해선)이 직원에게 하는 말이다. 고아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들어오기 전과 후, 어떻게 성장했을까.
"저도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구나.(웃음) 자영의 후반부 대사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왜 일을 하는 걸까. 돈을 벌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곳의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뭉클했던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하고 싶지만, 가장 큰 역할은 관객분들이 계실 때 가능한 거거든요. 그 부분에서 자영이에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고아성은 20대를 마무리하고 있다. "20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은근히 많은 변화가 있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그다.
"20대 초반에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도 장르가 다양했고요. 스펙트럼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근 몇년 동안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닮고 싶고, 존경하는 분들을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저도 모르게 추구해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자영이도 그래요. 자기의 믿음을 가지고 파이팅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30대를 바라보는 고아성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순간은 뭘까.
"인스타그램이요. 작품 수도 많아지고, 오래 일을 하기도 했는데요. 갑자기 '이 작품 재미있게 봤어요'라는 말을 듣는게 그렇게 반갑고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마주하게 되거든요. 정말 다들 센스가 대단하세요. 요즘 그 이야기를 듣는 것에 푹 빠져있는 것 같아요."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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