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동원에게도 시간이 간다. 아역배우 이예원에게 “강동원 선배님이 ‘옛날에’ 굉장히 핫했다더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른이 된 이들에게는 낯설겠지만 8~9살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말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피곤하고”라는 나이 마흔을 지난 강동원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되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반도’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배우 강동원과의 인터뷰에서 자연스레 언론시사회 때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강동원은 유독 아역배우들이 질문을 받고 대답할 때 옆에서 몸을 기울이며 열심히 조언했고, 가장 크게 웃으며 반응했다. 예전보다 더 다정해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예전에도 아역 친구들에게는 잘했어요. 아역 친구들이 주눅 들까 봐, 상처받을까 봐요. 어렸을 때, 상처받은 건 계속 기억에 남잖아요.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계속 남아있듯, 다들 있잖아요. 특히, 어린 나이에 일하면서 상처까지 받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릴 때 연기하면서 상처받은 기억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 '반도' 시사회 中 강동원, 질문 잊은 아역배우 챙기는 자상한 삼촌
강동원은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았다. 강동원은 진짜 히어로는 ‘반도’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의 가족 준이(이레), 유진(이예원), 김노인(권해효)이라고 말한다. 다른 작품과 달리, 강동원은 이레가 운전대를 잡은 차 뒷자리에서 이리저리 치여야 했다.
이레는 언론시사회에서 “선배님들의 조언으로 카체이싱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함께한 배우 이정현과 강동원에게 감사함을 표현한 것. 하지만 강동원은 “저희가 도움을 준 게 뭐가 있어요. 워낙 잘해서 전 뒤에서 열심히 굴렀죠”라고 겸손하게 답하며 이레를 칭찬했다.
“이레가 돋보여야 하는 장면이었고, 뒤에서 많이 굴러다니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이레가 현장에서도 너무 잘해서, 진짜 멋있다, 진짜 멋있다, 계속 그랬어요. 나중에 큰 극장에서 보면 엄청 멋있을 거라고.”
▲ 영화 '반도'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김도윤,김민재,구교환,이정현,이레,이예원,연상호 감독,강동원,권해효 /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DB
현장에서 가장 막내였던 이예원부터, 김노인 역의 권해효까지. 화기애애했던 ‘반도’의 현장이었다.이런 호흡이기에 관객의 마음에 공명할 ‘반도’의 메시지가 가능했다. 강동원의 “좋았어요”라는 대답 안에 현장은 녹아 있었다.
“권해효 선배님과는 함께 작품을 만들어본 적이 있었고요. 이정현 선배님과는 처음 만났는데, 워낙 상냥하신 분이시더라고요. (김)민재 형은 잘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함께 작품을 한 것은 처음이라 좋았고요."
"구교환씨는 처음 만났는데 독특해서 좋았고요. (김)도윤 씨도 신선하잖아요. 제가 ‘전에 뭐 했어요?’라고 물으니까 ‘곡성’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기억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곡성’에서 신부 역할이셨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러네, 그러네’ 하고 놀랐죠.”
▲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 사진 : NEW 제공
무려 연상호 감독과도 호흡이 좋았다. 다음 작품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얼마든지”라고 답한다.
“호흡이 되게 좋았어요. 연상호 감독님은 애니메이션 감독님 출신이셔서 그런지, 배우들에게 디테일하게 디렉팅을 주지 않으세요. 본인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걸 시키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또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감독님께 뭘 잘 안 물어봐요. 대신 초반에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 부분이 잘 맞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그냥 계속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연기는 상상이고, 기본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해지려고 하고, 영감은 여러 곳에서 받는 거니까요. 특히, 저같이 연극 출신이 아닌 분들은 아무래도 기초 훈련이 그분들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걸 보완하려고 하고 있어요. 대신 연극에서 오신 분들은 카메라 적응에 힘들어하시긴 하죠. 그게 서로의 장단점인 것 같아요.”
▲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 사진 : NEW 제공
배우와 작품을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냉정하게 이야기하던 강동원이 말랑말랑해졌다. 나이 마흔을 지난 남자로서, 결혼해서 가족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제일 대단한 사람들이 아이 키우는 사람 같아요. 인내심이 굉장히 강한 친구가 있는데, 한 번 술을 마시면서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아이에게 화를 내는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근데 한계치까지 도달했었다고요.”
“저한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어요. 친구들의 아이들 중 초등학생도 있어요. 예전부터 가능한가는 항상 얘기했던 것 같아요.”
▲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 사진 : NEW 제공
사람 강동원이 나이 마흔을 지나고 있다. “만성피로”가 생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아무래도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이 늘어난 느낌”을 나이 들어가는 것의 장점으로 꼽는다.
“예전에는 저 스스로를 돌보기에도 바빴어요. 요즘에는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아주 조금이지만, 예전보다 현명해진 것 같고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말도 더 순화할 수 있게 됐고, 화도 좀 덜 내게 됐고요. 주변 사람을 돌보는 것도 예전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배우 강동원은 좀 더 진지해지고 있다. 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존버”(최대한 버텨라의 속어)를 말해놓고, 그 의미에 진심을 담았다.
“얼마 전에 윤종빈 감독님(영화 ‘군도: 민란의 전쟁’ 연출)께 배웠어요. 존버. 그냥 지금 제 시기가 이제는 정말 완전히 성인 남자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을 해요. 조금 잘 정비를 해서 저 단어처럼 ‘존버’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