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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살아있다’ 유아인, 내려놓다

기사입력 2020.06.19.23:30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
    배우 유아인의 첫 번째 스크린 주연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어진 질문이다. 지난 2015년 인터뷰 당시, 유아인은 “훌륭한 소년이 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훌륭한 어른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고”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유아인은 오는 24일 개봉 예정인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았다. 준우로 말하자면, 딱히 결핍이 없어 보이는 친구다. 게임을 하다 미처 끄지 못한 컴퓨터 불빛 속에서 아침 10시쯤 느릿느릿 일어나, 습관처럼 엄마를 찾고, 가족 모두 외출 중임을 알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통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맘 편한 인물이다.

    적당히 부유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청년, 어딘가에 불 지를 일도 없고(버닝), “어이”를 찾을 일도 없고(베테랑), “언제부터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소!”(사도)라고 아버지에게 울분을 토할 일도 없다. 유아인은 “되려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덜 강렬해도, 편해도, 인물의 힘이 강하지 않아도, 매력이 없어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예전에는 좀 더 진지하고, 묵직하고, 깊게 파고들고, 이런 작품들이나 배역을 쫓아다니고 좋아했다면요. 그런 인물들을 여러 번 소화하고 나서는 다른 여유가 생겼어요. 그 전에 ‘완득이’나 선재(‘밀회’), 깡철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오긴 했거든요. 그런데 선 굵은 두 작품(베테랑, 사도 등)로 대중들이 저를 인식하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인상들도 재미있게 흐름을 타면서 만들어 볼 여지가 있다, 전에는 갖지 못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렵다, 세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저를 평가하는 말뿐만이 아니라요. 생활 속에서 저를 두려워하고 말 건네기도 조심스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편하게 대했던 친구들도 불편해한다거나. 배우가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제 의지와 달리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근 5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매력이 없으면 어때, 좀 망가지면 어때, 이런 여유가 생겼달까요. 특히 ‘#살아있다’는 관객과 재미있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살아있다’의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대중은 환호했다. 예고편 한 편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유아인이 주연을 맡은 K좀비물, K좀비물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생존 스릴러 같은 작품. 그 속에서 유아인은 멋짐을 내려놓았다.

    “정말로 준우가 멋있게 안 싸우길 바랐어요. 유빈이만큼 정제된 동작이 아닌, 흐느적거리고 허우적거리며 옆에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멋있는 척하며 칼싸움도 해봤으니까, 어리숙하고, 어설프고, 엉성하고, 그런 안 해본 면들이 부각되는 인물이면 좋겠다. 그래서 원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박)신혜씨 옆에서 좀 더 펄럭인다는 느낌으로 만들어간 것 같아요.”

    유아인이 내려놓은 덕분에 ‘#살아있다’는 유아인을 만나게 됐다.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유아인이 ‘#살아있다’에서 짊어진 부분은 상당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처럼 변하는 사람들로 뒤덮인 세상, 그들을 피해 집에 고립된 준우의 첫날부터 20일째까지를 스크린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먹방, 빈지노의 노래, 춤부터 외로움, 무기력, 분노, 절망에 이르는 감정까지, 유아인이 모두 짊어질 부분이다.

    “원래는 현장 편집본을 잘 안 보거든요. 그런데 ‘#살아있다’는 매주 확인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애착이 있어서라기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호흡 조절도 필요했고요. 확실히 책임이 느껴진 것 같아요.”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결핍, 청춘의 얼굴이라고 불리던 ‘유아인’을 내려놓고 선택한 작품. 공교롭게도 제목은 ‘#살아있다’였다. 과연 유아인을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뭘까.

    “아마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사랑할 때가 가장 크게 느껴지겠죠. 저에게도요. 그 느낌만큼 강렬한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살아있고 싶잖아요. 그런데, 살아있다는 느낌은 계속 되뇌어야 하는 것 같아요. 느낌을 자각할 수 있는 매개체들이 중요한 것 같고요. 영화도 그중 하나일 수 있겠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질문을 무언가가 던져주면, 그 순간 갑자기 숨이 ‘후’하고 쉬어지는 것도 같거든요. 영화 ‘#살아있다’가 화두가 되었으면 하죠.”
  • MBC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와 유튜브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한 유아인 / 사진 : MBC,EBS 제공
    ▲ MBC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와 유튜브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한 유아인 / 사진 : MBC,EBS 제공
    유아인은 ‘#살아있다’의 개봉을 앞두고,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하고, 유튜브 크리에이터 펭수와도 만난다. 이것 역시 새로운 도전이다.

    “사회적 퍼포머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중 하나가 연기가 될 수 있고, 방송이 될 수 있고, 움직임을 드러내는 다양한 형식의 표현들이 있겠죠. ‘나혼자 산다’도 워낙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이었고요. ‘#살아있다’도 관객과 편안한 소통을 하는 캐릭터이니까요. 제 삶의 흐름 안에서 도전하게 된 일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배우답다는 것, 그런 강박 때문에 조심성이 있었다면, ‘이게 뭐 대수야? 지금 시대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영화, 배우,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사서 보는 배우가 더 멋있고 연예인이고 그런 게 아니고, 안방 시청자들을 위해 몸을 던지고 삶을 던지고 사람과 호흡하고 위로를 전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위대함도 크다는 생각이 많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어요. 특별하다고. 저는 아무런 특별한 느낌도 없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어쨌든 저마다 다른 일과 삶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안에서 뭔가 특별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특별한 게 대수로워서가 아니라, 다름이라는 게 당연한 거라서,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단련도 많이 됐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잖아요. 안 이상한 사람에게 특별한 연기를 기대하겠어요.”(웃음)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 영화 '#살아있다'에서 준우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사진 : UAA 제공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유아인이다. “꿈을 깨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유아인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친구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희망과 실질적인 가능성이 주어지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여전한 유아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데뷔작에서 “네”라고 답했던 질문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30대의 선을 넘은 유아인은 여전히 “훌륭한 소년”이 되고 싶을까. 대답은 “그 말들이 저에게 준 체면에선 많이 벗어난 것 같아요”라고 시작한다.

    “그 질문에 ‘네’라고 답하고, 그런 인생을 살아버렸죠. 그게 나쁜 인생은 아니었지만, 너무 강박적으로 산 측면이 있어요.”

    “훌륭한 무엇이 되는 것은 좀 포기했어요. 훌륭한 건 어느 날 되는 게 아니고 매일 매일 하는 거더라고요.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대부분 아닌 날이 많아서 쉽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도 그냥, 재미있는 친구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루한 친구보다는. 어른이 아니고 친구. 훌륭한 이런 말도 다 빼버리자, 훌륭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없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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