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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한 남편과 사별 후 고향인 태백으로 내려온 ‘영분’(정은경)은 지인을 통해 딸 ‘한희’(장선)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철없던 어린 시절 낳았지만,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려워 버리고 떠났던 딸이다.
잊고 있었던 딸의 존재에 영분은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한희가 운영하는 필라테스 교습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차마 엄마라고 밝히지 못한 영분은 얼결에 교습소에 등록해 선생님과 수강생으로서 딸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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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삶을 위해 딸까지 버리고 떠났던 영분이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 ‘윤식’(김준배)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난 시집 여러 번 갔는데”라고 고백하는 영분의 한 마디에는 녹록하지 않았을 그녀의 인생이 엿보인다.
수강생이 없어 고생하는 딸이 안쓰럽지만, 자신도 모텔 청소를 하며 더부살이하는 처지인 영분이 한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영분은 한희 몰래 교습소 전단지를 태백 곳곳에 붙이는 것으로 모정을 대신하고, 한희는 엄마인줄도 모르고 자신에게 친절한 영분에게 점점 끌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붙이지 않은 지역에 붙은 전단지를 수거하러 간 한희는 그곳에서 전단지를 붙이고 있는 영분을 발견하고 그녀가 엄마임을 알아챈다. 오랜 시간, 각자 외로운 삶을 살아오다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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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의 언덕’은 애처로운 삶을 살아온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분에게 딸 한희는 애증의 존재다. 꽃다운 나이였던 자신의 인생을 망친 존재이자, 오랜 세월 품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영분은 많이 웃으라고 지어준 ‘한희’라는 이름처럼 속 없이 웃는 딸의 모습이 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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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전형적인 신파에 가깝지만, 영화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이는 모두 극 중 인물들과 동화해 깊은 울림을 선사한 베테랑 배우들의 힘이다. 연극을 통해 관객과 오랜 기간 소통해온 정은경,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장선, 다양한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해 인지도를 높인 김준배 등은 연기가 아닌 실제를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가슴 아픈 사연 속 뭉클한 이야기로 따뜻함을 전하는 영화 ‘바람의 언덕’은 4월 23일 개봉이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