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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돈이 절실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도저히 감당 안 되는 빚에 시달릴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일자리를 찾기도 만만치 않을 때, 암울한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고 싶을 때 등. 이런 절박한 상황에 거액이 든 돈 가방을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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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돈 앞에 드러난 사람들의 짐승 같은 민낯을 날카롭게 파고든 범죄 스릴러물이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에 시달리는 항만 공무원 태영(정우성),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힘겹게 이어가는 중만(배성우),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전도연) 등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은 우연히 거액의 돈 가방을 마주한다. 돈 가방이 절박한 상황을 바꿔줄 마지막 기회라 여긴 이들은 인생 역전을 위한 한판 대결에 뛰어든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서로 속고 속이는 가운데 돈 가방의 행방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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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서는 누구도 믿지 말라’는 교훈 아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는 끝을 쉽게 예측할 수 없게 한다. 각 인물의 절박한 상황이 맞물리며, 조금씩 드러나는 돈 가방의 사연과 비밀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극에 대한 몰입을 높인다.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겪는 아이러니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며, 지금까지의 범죄 스릴러와는 또 다른 매력과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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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등 국내 걸출한 배우들의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힘을 뺀 모습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전도연, 중년 가장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높은 공감을 전달한 배성우, 단 몇 장면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윤여정 등 영화는 주연에서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연기력을 과시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앙상블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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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존의 반듯한 이미지를 벗고 허당기 가득한 태영으로 완벽하게 분한 정우성의 연기는 그중에서도 눈에 띈다. 멀끔한 외모와 상반되는 진정한 호구 캐릭터로 새로운 매력을 추가한 정우성은 영화의 웃음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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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내용이 많이 등장하지만, 19세 이상 관람가치고 표현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다. 김용훈 감독은 “안 보여주는 것이 더 공포스러울 수 있고, 강렬할 수 있다”며, “관객들이 힘겨워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로 개봉을 한차례 연기했던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2월 19일 개봉이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