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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 가장 수고스러운 행동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거리를 걷기, 12월 31일 자정에 종각 보신각 찾기, 그리고 1월 1일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차를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수고스러운 일 중 하나인 국내 ‘해돋이 명소’를 찾아가는 일은 수 많은 인파와 교통체증으로 인해 기분과 시간, 그리고 명소를 찾는 의미도 엉망이 될 수 있다. 수고스럽지 않게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기념하길 원한다면 세계의 새로운 명소를 찾아보면 어떨까.
시간 여행자의 해돋이 감상법 독립령 사모아와 미국령 사모아 -
우선 해돋이의 원조부터 알아보자. 해가 바뀌는 순간의 감동을 경험하기 위함이니, 당연히 날짜 변경선 주변으로 이동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와 ‘가장 늦게 지는 해’를 거의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사모아(Samoa)다.
사모아는 독립국 사모아와 미국령 사모아 두 곳이 있는데, 두 섬을 오가는 비행시간은 18분인 반면, 시차는 24시간이 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단 시간에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독립국 사모아에서 일출을 감상한 후, 미국령 사모아로 이동하면 가장 단시간에 가장 오랜 시간차를 두고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의미로만 따지면 가장 특별한 해돋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아침에 바뀐 운명, 사모아의 물리누 곶 -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사모아의 가장 큰 섬의 이름은 사바이(Savai'i)다. 남태평양에서는 하와이 다음으로 큰 섬으로, 사바이 섬에서 서쪽으로 가장 툭 튀어나온 부분을 물리누 곶(Cape Mulinu'u)이라 부른다. 사바이는 '세상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물리누 곶은 한 해의 마지막 날 일몰을 보기 위해 몰려들던 명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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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에 르 라고토(Le Lagoto)라는 리조트가 있는데, 사모아어로 '일몰'이다. 당연히 일몰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숙소였다. 한때 사바이 사람들은 "We're so relaxed, it's yesterday"라는 말을 사바이 섬의 슬로건으로 삼고 '공식적으로' 여유를 부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모아의 역사에 하루가 사라지면서 가장 게으른 곳에서 가장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르 라고 토 리조트도 이제는 '일출'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 2011년 12월 31일까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일몰 명소가 하루아침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추억 속의 한정판이 되어 버렸다. 물론 사방이 사람들은 전혀 부지런해지지 않았다.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유일한 땅 피지의 타베우니 섬 -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곳은 지구상에 단 네 곳이다. 그 중에서 피지의 타 배우니(Taveuni) 섬은 날짜가 변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명소다. 그 유명한 명소에 실제 와보니 '여기가 바로 그곳’이라는 대형 표지판 하나와, 백 년은 더 되어 보이는 낡은 교회가 전부다.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은커녕 생수조차 파는 상인도 없고,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교회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관광안내소를 세우고 지도와 브로슈어를 비치하고, 기념품 상점을 들여놓아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거라는 “현명한 조언”을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그곳은 신성하고 순수했다. 정신없는 이벤트와 술판에 흐느적 거리지 말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중간에 서서,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 간절히 갖고 싶다면 피지의 타 배우니를 추천한다.
몸과 마음을 물로 씻는다. 발리 우붓의 띠르따 엠풀 사원 -
발리 우붓의 띠르따 엠풀(Tirta Empul) 사원은 악마와의 전쟁 중에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사원이다. 사원의 물로 목욕을 하면서 악령의 저주에서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묵은 해의 악령들을 말끔히 씻고 새해를 준비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굳이 사원이 아니라도 우붓에 가는 것만으로도 전환점을 맞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발리의 지형은 사람의 뇌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우붓의 위치는 소뇌 위치 즈음이다. 소뇌는 귓속의 평형기관과 연결되어 평형감각을 조절한다. 우연이지만 우붓은 그런 곳이다. 우리 삶의 균형이 깨졌을 때, '과연 이것뿐일까'라는 질문이 피어오를 때 홀로 찾게 되는 동굴 같은 곳이다.
장엄한 소원을 가득담은 신비로운 미얀마 바간 -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인 미얀마의 바간(Bagan)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해돋이의 명소 중 명소다. 마치 일출과 함께 도시 전체가 잠에서 깨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이 밀려드는 풍경은 일출, 일몰 때가 아니라도 늘 감동적이지만, 특히 안개 위로 솟아있는 불탑들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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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속초시와 비슷하지만 불교 유적이 무려 3천 500여 개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발에 챌 정도로 파고다와 석탑이 즐비하다. 정말 1에서 2미터에 한 개씩 경주 첨성대 같은 유적들이 자주 보이니 처음에는 경탄을 금치 못하다가 금세 식상해질 정도다.
11세기부터 13세기에는 이 좁은 공간에 무려 4천여 개에 달하는 탑이 있었다고 한다. 몽골 침략과 1975년, 2006년 두 번의 지진으로 많은 파고다가 무너졌지만 아직도 파고다의 개수와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5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뜰 때 가장 찬란한 불교사원 보로부두르 -
일출을 보러 이곳을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새벽에서 해돋이로 이어지는 시간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을 찾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안개 속에 묻힌 사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태양이 부처의 얼굴을 환히 비추는 순간은 이곳에 정말 어떤 영적인 힘이 깃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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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는 가로 850m, 세로 1050m 외벽 안에 여러 개의 사원이 몰려 있고, 발간은 좁은 땅에 탑과 사원이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반면, 보로부두르 사원은 35미터 높이의 단일 건물이라 해돋이 명소로는 최상의 입지를 자랑한다.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조차 보로부두르와 같은 유형의 ‘불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2012년 7월 세계 최대 불교사원으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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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박재아 남태평양관광기구 한국대표
- 편집=이주상 기자 jsf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