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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자기애 또한 강렬하다. 무엇보다도 이상훈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살아간다" - 선동열 감독
1990년대 중반 LG 트윈스의 에이스로 마운드를 지배했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리그와 미국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야생마' 이상훈. 그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야구하자 이상훈'이 출간됐다.프로야구 선수를 돌연 은퇴한 내막, 록밴드 시나위와 만남과 가수 데뷔, 학창 시절 임수혁과의 일화, 어린 시절의 가슴 아픈 가족사까지 그의 인생을 엿 볼 수 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인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고 말했다. 야구 선수, 록밴드 리더, 미용실 운영까지. 이상훈의 삶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전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그 도전을 계속된다. 선동열 감독의 '자유로운 영혼'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이상훈의 인간적인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
2004년 1월 이상훈 선수의 트레이드와 6월 느닷없는 은퇴는 국내야구계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마운드를 떠난 이상훈은 록밴드 WHAT!의 리더로 변신해 무대에서 또 다른 열정을 쏟아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상훈은 국내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깊이 오해 받고 있는 존재다. 고집 세면서 자유분방하다는 평은 그라운드에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길게 기른 갈깃머리 때문에 생겨난 추측이다. 그는 누구보다 야구에 진지했고, 유니폼에 자긍심이 컸고, 최고를 위해 철저하게 자기를 단련했다.
야구장을 떠난 이상훈은 여자야구팀 ‘떳다볼’의 감독을 아무 조건 없이 맡아 헌신적으로 코칭에 임해 팀에 우승을 안겨줬다. 또 프로야구에 진입 못한 선수들의 마지막 패자부활전이 펼쳐지던 고양원더스팀의 투수코치로, 선수들을 다독여 야구에 다시 전념할 수 있게 했다. 기술의 야구가 아니라 삶의 야구를 가르쳤다. 어떤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냉혹한 프로야구판에 새롭고 인간적인 리더십을 몸소 실천했다.
이상훈은 유니폼 입은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좀 거칠고 투박해도 부딪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더라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한국의 야구문화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구단에 대한 선수들의 발언권도 신장됐고, 미디어와도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차츰 자리잡았다.
“팬들은 감동을 원하지 기록을 원하지 않는다”
이상훈이 자기 수첩에 써둔 글이다. 그는 기존 생각이 정리되거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글처럼 살기 위해, 고단한 쪽을 선택했다. 돌아가고 타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자기 앞에 놓인 길을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마주 섰다. 감동과 기록이 부딪힐 때 그는 늘 감동을 선택했다. 자주 손해를 감수했고 때로 미래를 희생했다. 그는 예술가였다. 마운드라는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공 던지는 '행위예술가'였다. 덕분에 팬들은 꿈을 꿀 수 있었다. 가슴 설렐 수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안겨 준 소중한 선물들이다. 이 책은 그 선물들에 대한하나의 보답이다.
그리고, 팬들은 여전히 이상훈을 사랑한다.
이상훈은 불꽃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뒤처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했다. 최고의 자리를 추구했지만, 낙오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지금 이상훈이 보여준 따뜻한 리더십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 박해진 기자 hi21h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