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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올해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구 선생을 2019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며,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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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1876년 7월 11일(양력 8.29) 황해도 해주(海州) 백운방(白雲坊) 텃골(基洞)에서 태어났다.
1896년 국모를 살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른 선생은 1904년 신지식인을 길러내는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황해도 문화군 초리면(신천군 초리면)의 서명의숙(西明義塾)과 안악의 양산학교(楊山學校) 교사, 재령의 보강학교(保强學校) 교장 등을 지내며 교육 구국운동에 힘을 쏟았고, 최광옥과 함께 해서교육총회(海西敎育總會)를 조직해 학무총감(學務總監)에 추대되어 각 군을 돌며 계몽운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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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10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1911년 일제에 붙잡혀 징역 2년 형을 언도받았고,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15년 형이 추가되어 옥고를 치르다 1915년 가출옥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임명되어 일제가 보내는 첩자들을 가려내 처단하고 정부 요인들과 동포들의 안정을 지켜내는 일을 수행했다. 1931년에는 임시정부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을 맡아 일왕 처단(이봉창), 조선 총독 처단(이덕주·유진식), 관동군사령관 처단(유상근·최흥식) 등을 지휘했다.
1933년에는 장제스 총통을 만나 한인 청년을 장교로 길러내는 길을 열었다. 뤄양(洛陽)에 있던 군관학교에 한인 청년들을 장교로 길러낼 특별반을 만들었으며,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이청천․이범석․오광선 등을 초빙하여 장교 양성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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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선생은 한국독립당의 집행위원장, 광복군 통수권자,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키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활약했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 1진과 함께 환국 후 오로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애쓰시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蔣)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했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으로 치러지고 효창공원에 안장되었고,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한편,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는 백범김구기념관이 있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